각기 다른 지지도 결과 보여주는 여론조사 기관, 어디까지 믿을까
의뢰인, 후보자 배열 순서, 오차 보정법 따라 다른 수치 나올 수도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지난해 말 맹형규 한나라당 의원실은 기독교방송(CBS)의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항의했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서 발표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가 원인이었다. 연거푸 두 번의 조사에서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의원이 맹 전 의원(1월31일 의원직 사퇴)보다 훨씬 높게 나왔던 것이다. 맹 전 의원 쪽은 동일 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패널 서베이’ 조사방식을 활용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도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이 사실과 다르자 맹 전 의원 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했다.
읍소하고 항의하는 의원, 억울한 조사 기관
비슷한 시점의 일이다. 홍준표 의원실은 여론조사 기관인 ‘더피플’의 장강직 사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어떻게 이렇게 나올 수 있냐?” 맹 의원 쪽이 홍 의원보다 높게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설문지의 후보자 경력을 맹 의원은 3개, 홍 의원은 2개로 불러준 것은 장 사장도 인정한 작지 않은 실수였지만, 그것 때문에 결과 전체를 “조작했다”고 항의하는 것에 장 사장은 분통을 터뜨렸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 후보자들이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홍 의원 쪽과 맹 전 의원 쪽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거의 매주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를 둘러싼 예비 후보들 간의 물밑 신경전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보여준다. 후보자들 처지에서 소수점 이하의 수치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당내 경선이나 본선 투표 때까지 경쟁자와 비교우위를 그나마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세를 굳혀갈 수도,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다. 당 후보자 공천 과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통상 선출직에 출마를 하기 앞서 자체 여론조사 한두 번을 통해 바닥 민심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다. 선관위에 당내 경선을 위한 예비후보 등록 시점, 즉 선거 후보자로서 공식적인 활동이 시작되기 이전에도 여론조사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중구난방식의 여론조사가 경쟁이 치열할 때 비교우위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뿐더러 신뢰성까지 떨어뜨린다는 데 있다.
열린우리당은 2·18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 정동영·김근태 다음에 누가 3등이냐를 놓고 각축을 벌였다.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김혁규 전 경남지사, 임종석 의원은 막판까지 서로 “내가 3등”이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각 캠프가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였다. 이들이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였기 때문이라고 넘길 수도 있지만, 각 캠프의 조사가 해당 캠프의 후보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희한한 현상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여의도 정가에서는 어느 여론조사 기관은 어느 후보계라는 말이 나돈다. ‘리얼미터’는 홍 의원과 가까운 게 아니냐는 소문에 시달리고, ‘더피플’은 맹 의원 쪽이라는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서울이나 지방이나 다른 여론조사 기관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열린우리당 3등 쟁탈전에서도 시끌
분명히 서울시장 조사를 놓고 봤을 때 조사기관에 따라 특정 후보가 높고 특정 후보가 낮게 나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표 참조).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영태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조사 결과가 의뢰인한테 좋게 나올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설문안의 예시 항목에 의뢰인을 먼저 배치하면 높게 나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리얼미터’는 홍 의원에게서, ‘더피플’은 맹 의원에게서 한 건도 돈을 받고 조사 의뢰를 맡은 적이 없다고 한다. 여론조사 기관의 처지에서 눈앞의 단기적 이익을 좇아 생명이나 다름없는 공정성과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릴 수 있겠냐는 여론조사 기관들의 해명도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후보자들의 지명도가 낮을 경우 변별력 또한 낮아 예시의 앞에 놓으면 실제 수치가 높게 나온다는 것을 이용해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조사기관들이 가장 많이 받는 항의도 후보자의 예시 배열 순서가 되고 있다. 그는 또 “후보자의 경력을 어떻게 들려주느냐도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를 오래 앞두고 어떤 후보자를 예시에 넣고 안 넣고 하는 것도 다른 결과를 빚어낼 수 있다.
가장 큰 변수는 조사기관의 고유한 몫인 조사 결과치를 어떻게 보정하느냐다. 조사기관들은 거의 모두 보정치의 방법과 노하우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보정은 외부적 원인에 의한 오차를 없애고 참에 가까운 값을 구하는 작업으로 연령대별, 조사 시점 등을 따져 결과에 반영하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 기관의 대표는 “보정 과정에서 의뢰인에게 우호적으로 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물론 조사 규모나 무응답 등 눈에 보이는 변수도 있다.
의뢰인인 후보자와 여론조사 기관이 갑을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 조사 결과를 왜곡할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최근엔 한 조사기관이 의뢰인의 지지율이 높게 나온 조사를 공짜로 언론에 제공해 보도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조사 업체의 한 대표는 “조사에서 1등 나온 후보자는 언론에 보도되도록 해달라고 하는 반면에 지지율이 떨어진 후보는 보도를 안 해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후보자들이 정확한 정세 판단 이상의 요구를 하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같은 현상을 “리서치가 본래 조사와 홍보 기능을 같이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보자로서는 조사 결과가 당선이나 자신의 목표에 영향을 끼치는 홍보 수단이 되길 바란다”고 분석했다. 후보자들이 매달리는 까닭은 여론조사 결과가 때론 후보의 운명을 가르는 힘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26 재선거 직전 대구 동구 을에서 한나라당 공천 신청자들은 막판까지 열린우리당의 이강철 후보에게 밀렸다.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공천 신청자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비례대표 유승민 의원이 이 후보를 누른다는 여론조사 결과치를 근거로 돌연 유 의원에게 공천권을 안겨줬다. 민주당은 지난 4·15 총선에 앞서 여론조사를 근거로 공천 심사 탈락자를 솎아내자, 탈락자들이 재심사를 요구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장강직 사장은 “10·26 재선거 때 한 캠프에서는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나온 결과를 발표하자 ‘완전히 망하게 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후보자들이 항의하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관련 기관 급증해도 협회는 통제 못해
과거와 달리 여론조사 기관이 많아진 것도 조사 결과 왜곡의 잠재적 원인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사기관의 증가는 돈 있는 후보만 판세를 읽을 수 있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정보 독점 해소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비용이 낮아지면서 과당경쟁이 벌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전화여론 조사 방식은 샘플 하나에 1만원 정도를 표준가로 하던 것이, ARS 방식으로 1천 명 대상으로 한 조사가 150만원대까지 내려왔을 정도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1994년 전국 125곳에 불과하던 시장조사 및 여론조사 업체 수가 2004년엔 242개로 두 배 증가했다. 서울에만 165곳이 몰려 있다. 지난해부터 올 지방선거와 내년 대선의 대목을 겨냥해 신생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업체 수의 증가 폭은 훨씬 커진다. 하지만 소수의 메이저 조사 업체를 중심으로 판이 짜인 협회는 업계의 자율적 감독과 규제의 기능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여론조사 결과를 따져보고, 때론 뒤집어보고 투표에 얼마나 반영할지는 고스란히 유권자의 몫으로 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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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독자나 시청자들이 복잡한 수치가 나열되는 여론조사 보도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제목만 훑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언론사와 여론조사 기관, 당사자들이 노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보정(가중치) 방식, 예시 등은 어차피 알 수 없지만 행간의 기초적인 정보를 통해 나름대로 여과해서 소화하는 몇 가지 방법은 가능하다.
질문지를 꼼꼼하게 읽자! 대통령감과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를 묻는 것은 분명 다른 결과와 의미를 갖는다. 요즘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과연 20%대일까 30%대일까? 질문지가 ‘아주 잘하고 있다’ ‘잘하는 편이다’ ‘못하는 편이다’ ‘아주 못하고 있다’는 4지 선다인가 아니면 ‘보통이다’를 포함한 5지 선다인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편이다. 20%대는 대게 5지 선다에서, 30%대는 4지 선다에서 나온다.
보도 시점을 따지자! 신년을 맞아 많은 신문과 방송이 지난 1월1~2일치 보도에 정치 여론조사를 내놨다. 2~3일 전에 조사한 것도 있지만, 한 언론사는 2주 전 조사를 보도했다. 후자는 문제가 있다. 여론조사는 현 시점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지 과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의 수를 세자! 5·31 광역단체장 후보 지지도를 500 미만인 불과 300명 안팎의 조사대상에서 찾았다고 하는 것은 신뢰도가 낮다. 무응답층이 50% 안팎으로 높게 제시될 때도 문제다. 예시를 던지고 묻는 것인지 아닌지도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만, 이를 밝히는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은 그다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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