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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당한 자여, 어디로 갈거나

등록 2006-01-04 00:00 수정 2020-05-03 04:24

한나라당 내에서 노골적으로 고립된 소장 개혁파 중심의 수요모임
비판적 소수자로 남을 것인가, 당의 주류가 되기 위해 나설 것인가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바깥으론 정체성 위기, 당 내부적으론 왕따.”

한나라당 내 소장 개혁파 의원들이 중심이 된 ‘새 정치 수요모임’(회장 박형준)이 최근에 처한 상황을 압축해 표현한 당내 한 보좌관의 진단이다. 소장 개혁파들이 당이 개정 사학법의 통과에 반대하며 장외투쟁에 나서는 과정에서 브레이크 구실을 전혀 못하고, 동료 의원들로부터 불신에 가득 찬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현상을 빗댄 것이다.

<오마이뉴스> 타면 해당행위라며 몰아붙여

수요모임이 안팎에서 이중의 위기에 처했다. 동료 의원들의 노골적인 무시와 그로 인한 고립은 심각하다. 한나라당이 지난 12월16일 사학법 처리 무효를 주장하는 서울시청 앞 장외집회에서 소장파의 한 기둥인 원희룡 최고위원 등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앞서 원 최고위원이 당의 장외투쟁을 비판하는 글을 쓴 것이 화근이었다. 당내 보수강경파 의원들은 지난해 말 국가보안법 등 ‘4대 법안’을 둘러싼 대치 정국이 형성되면서부터 원 최고위원 등의 탈당을 공공연하게 외쳐왔다. 수요모임의 이성권 의원은 “당내 정치는 하지 않은 채 우리가 생각하는 주의 주장에만 목소리를 높이면서 동료 의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내 비판자로서 이미지만 제공하면서 고립된 방향으로 왔다는 것이다.

위기가 16대 국회에서 당내 개혁을 주도한 ‘미래연대’와 달리 의원들만의 폐쇄적인 모임의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한 보좌관은 “원외의 비슷한 개혁적인 성향의 목소리를 끌어안지 못한 채 원내의 소수 비판자로 갇혔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최근 수요모임에서 내보낸 정문헌, 진수희 의원이 각각 청년위원장과 여성위원장 선거에서 탈락했다고 보는 것이다. 밑바닥에서 당을 움직이는 대의원들과 당원들에게도 신뢰를 크게 상실한 것이다.

거꾸로 왕따를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너무 미적거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같은 이유로 강경파를 중심으로 한 장외투쟁에 반대하면서도 정작 초기에 적극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면이 있다는 점은 박형준 회장도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러나 소장 개혁파의 목소리를 포용하지 못하는 당내 고질적인 체질과 문화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의견이 더욱 설득력 있다. 당의 주류조차 소장 개혁파들이 젊은 유권자들을 상대로 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원희룡 최고위원, 정병국 홍보기획단장, 남경필 전 원내 수석부대표 등 수요모임을 대표하는 ‘남·원·정’ 3총사의 의견은 소수로 묻히고 만다. 이성권 의원은 “토론 자체가 부재하고, 나이와 선수가 강조되는 유교문화 속에서 당 지도부와 의원들의 수직적 관계가 여전하다. 이의 제기를 하고 이러한 질서를 깨려는 사람들을 악으로 분류하는 풍토가 당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소장 개혁파들의 당론과 다른 목소리들이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매체를 탈 때면 어김없이 친노 매체를 동원해 해당행위를 했다고 몰아붙이는 세력들이 나타난다.

최근 수요모임은 발전적 해체를 포함한 진로를 새롭게 모색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내부 결속력을 좀더 강화하면서 소수정예의 정치결사체로 가되 비판적 소수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외연을 더 확대하면서 당의 주류가 되기 위한 세력 발판을 마련할 것인지, 크게 두 가지의 길이 열려 있다. 굳이 홍역을 피하려 한다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의미 없는 집단으로 남을 가능성이 클”(수요모임의 한 의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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