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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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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변단체 앞에선 작아지는 여당

등록 2005-07-22 00:00 수정 2020-05-03 04:24

새마을운동조직 등 관변단체 육성법 폐지안을 당론으로 추진하지 않기로
다음 선거에서 그물망 조직 갖춘 단체들을 아군으로 만드려는 ‘표계산’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정권 차원에서 키웠지만 이제 정권 차원에서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관변단체가 커버린 것일까. 열린우리당이 관변단체의 ‘저항’을 우려해 관변단체육성법 폐지안을 당론으로 정하지 않기로 했다. 내년 지방선거 등 앞으로 정치 일정을 놓고 봤을 때 당론 차원의 입법 추진이 당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과거에도 표 의식해 매번 무산

홍미영·조성래 열린우리당 의원과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7월13일 각각 새마을운동조직·바르게살기운동조직·한국자유총연맹 육성법 폐지안을 의원 26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했다. 열린우리당은 하루 전날 고위정책회의를 열어, 홍미영·조성래 의원에게 법안을 제출하지 말 것을 설득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배기선 사무총장과 원혜영 정책위의장 등은 이날 아침 일찍 홍 의원 등을 불러놓은 가운데 관변단체 지원 폐지 법안을 놓고 비공개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당과 법안을 제출한 의원들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관변단체 지원법 폐지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당 차원의 지지와 뒷받침에 대한 기대를 접은 채 법안 제출을 서두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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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입장은 정확히 어떤 것일까. <한겨레21>이 입수한 열린우리당의 ‘국민운동단체 3대 특별법 폐지법률안 검토’ 문건을 보면, “법안 폐지를 추진하게 되면 국가 및 지역 발전을 위해 공익활동과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들의 사기 저하와 집단 반발이 우려되고, 새마을협의회 등 3개 단체의 회원이 330만여명에 이르고 전국 조직을 갖추고 있어 반정부여당 여론 형성 등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방방곡곡 그물망 조직을 갖추고 회원 330만명의 관변단체를 ‘아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마당에 굳이 ‘적’으로 돌려 반발을 살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책위는 검토 의견을 통해 “3대 특별법 폐지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하는 문제로서, 정치 일정 등을 고려하여 시간을 두고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 일정’은 오는 10월 재·보궐 선거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뜻한다.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란 다름 아닌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뭐가 유리한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3대 관변단체를 서운하게 해서는 당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속뜻을 담고 있다. 열린우리당 정책위의 결론은 자연스럽게 “현 시점에서 우리당 의원이 중심이 되어 발의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이어졌다.

열린우리당이 한발 빼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1988년 관변단체 특별법 페지안이 문정수 의원 등 163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후 93년과 96년 같은 법안이 발의됐지만 역시 통과되지 못했다. 매번 표를 의식해 본회의 표결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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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의 추진 과정은 ‘의외로’ 과거보다 나은 조건을 찾아볼 만한 게 거의 없다. 발의 의원의 수가 이번이 가장 적다. 또 여당 차원의 지원을 받을 기회를 잃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며 발벗고 나섰지만,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이다. 김영선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정부가 3개 (관변)단체를 폐지하려고 한다. 이것은 50년 동안 먹지 않고 잠을 안 자면서 피땀 흘리며 이 나라를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끌어낸 발전 역군, 건설 역군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관변단체가 여당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나라당도 잘 알지만 한편으론 관변단체와 보수성이 잘 맞아떨어지는 면이 적지 않은 탓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관변단체를 편들어서 손해볼 것이 하나 없는 장사다.

“실익이 아니라 옳으냐 그르냐를 따져야”

법안을 추진하는 의원 셋 다 공교롭게도 비례대표 의원들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관변단체 지역 조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편이다. 반면 당을 떠나 지역구 의원들은 관변단체 눈치보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당내에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다. 지역구 의원은 법안에 서명하기 어려운 형편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안 폐지에 찬성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관변단체의 항의와 로비의 위력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당 지지층한테서 비판을 받을까봐 쉬이 나서지 못하고 있다.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은 “당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득이냐 실이냐를 따지지만, 선거의 변수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다. 선거에서 실익의 관점이 아니라, 관변단체에 특혜를 주는 법을 그대로 두는 게 옳으냐 그르냐를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이 당 차원에서 추진하지 않는다면 관변단체 지원 폐지법안이 통과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금의 열린우리당 태도로는 또다시 과거를 되풀이할 뿐 과거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내세운 표 계산이 맞아떨어질지, 아니면 손대지 않고 놔두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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