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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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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에서 당 개혁의 리더로?

등록 2005-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당의장 도전하는 유시민 의원, “정동영계는 기득권 집단으로 전락했다”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노무현 정권 창출의 특등 공신’ ‘노무현의 삼별초’ ‘토론의 달인’ ‘정치 천재’….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경기 고양 덕양갑)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끝이 없다. 정치권의 손꼽히는 대중 스타인 그에 대해 상당수 네티즌들은 열광에 가까운 지지를 보낸다. 일부는 ‘유시민=개혁’이란 등식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스스로 ‘노무현 삼별초’ 보직 해임

그러나 여권, 특히 열린우리당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는 원성이 자자하다. 이른바 ‘유시민 비토’로 불리는 정서적 거부감도 폭넓다. “저만 잘난 줄 안다”는 것은 온건한 축에 속한다. 개혁 성향의 한 의원은 “지난해 국가보안법 폐지안 관철을 위해 동료 의원들에게 협조를 요구하자 몇몇이 ‘뜻은 옳지만 유시민이 하는 짓이 못마땅해 함께 못하겠다’고 말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할 정도다.

그는 당의장과 상임중앙위원을 뽑는 4월2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시 논란의 정점에 섰다. 유 의원과 이른바 ‘친노 적자’ 논쟁을 벌였던 국민참여연대의 정청래 의원은 “유시민은 선이고, 다른 사람은 악이라는 이분법은 잘못”이라며 유 의원을 ‘무오류의 정치인’으로 간주하는 네티즌의 태도를 비판해 파문을 일으켰다. 386 초·재선 의원의 대표주자로 지도부 경선에 출마한 송영길 의원은 “더 이상 개혁을 말하면서 편을 가르거나 당을 깨겠다는 독설로 당과 동지들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유 의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유 의원은 왜 동료 의원들로부터 ‘따’를 당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토록 많은 적을 만들고 ‘독선적인 나홀로 개혁주의자’라는 오명을 쓴 것일까. <한겨레21>은 3월14일 밤 유 의원을 만나, 그 까닭을 따져봤다.

그는 자신을 향한 동료 의원의 강한 거부감에 대해 “재주가 많으면 덕이 없다”며 ‘재승박덕론’을 역설했다. “나는 대통령과 멀리 떨어져 내 방식대로 일을 꾸미는 사람이다. 누가 나에게 무슨 보직을 준 경우는 없지만, 이 국면에서 이런 일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과제를 부여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일을 꾸미고, 사고를 쳤다. 그 과정에서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의 삼별초’를 자임하면서 적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당내 현안에 대해서도 독하게 말하는 거친 어법으로 논리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부닥친 것, 너무 사무적인 태도로 자신에 대한 동료들의 거부감을 형성한 것을 주요 단점으로 꼽았다.

그러나 그는 이제 보직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지난 2년 반의 정치적 격변기, 대립기를 통과해 정치 지형과 세력이 안정된 가운데 경쟁하는 ‘정책 경쟁기’로 들어섰다. 내가 과거에 해왔던 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스스로 (삼별초) 보직을 해임하고, 새 보직을 찾고 있다.” 당의장 도전이 바로 좀더 충돌이 덜한 보직으로 변경하는 핵심 절차라는 것이다.

“낡은 세력의 의도적 반감이다”

자발적인 보직 변경 신고가 또 다른 논쟁을 촉발하는 아이러니한 현재 상황. 유 의원은 자신이 도입한 기간당원제로 촉발된 정당 민주화와 파워 시프트(권력이동) 과정에서 기득권을 상실한 ‘낡은 세력’의 의도적 반감, 딴죽걸기로 규정했다. “기간당원제를 뼈대로 한 당헌은 과거 당의장이나 총재, 지구당 위원장, 국회의원, 원외 유력 정치인, 시도당 위원장, 계파 보스가 가지고 있던 각종 권력을 평당원에게 돌려주는 정당 내부의 미시 혁명, 권력 이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개혁의 흐름 속에서 기득권을 잃고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당원 손에 좌우당하게 된 기득권 세력들이 내놓고 저항은 못하고, 그런 파워 시프트를 기획하고 집행한 나를 원수처럼 보는 것이다. 과거 정당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던 사람들은 나를 싫어할 충분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내가 그들의 이익에 도움되면 단점도 가려지고 장점이 돋보일 텐데, 반대의 상황이 되니 나를 싫어하고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유 의원에게 제기되는 또 다른 의문은 창당 직후 첫 전당대회(2004년 1월)에서 협력 관계였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쪽과 결별하고 경쟁자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중심의 재야파와 연대하는 이유다. 정 장관쪽은 총선 출마자 공천, 당직 배분 등에서 충분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개혁당 그룹의 조직적 반발이라고 비판한다.

유 의원은 정동영 장관 계보가 당면 과제인 정당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기득권 집단으로 전락해 각종 구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결별했다고 공박했다. “지난해 1월 전당대회 때는 새로 창당한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당원 중심 정당을 만들기 위해 리더에게 확실한 칼자루를 줘야 한다고 판단해 내가 공개적으로 정 장관과 신기남 의원의 지지를 선언했다. 정 장관은 몇몇 실수가 있었지만 자력으로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를 2배나 끌어올렸고, 그것은 평가한다. 하지만 다수 의석을 차지했고 국정을 제대로 뒷받침해야 하는 상황에서 DY(정동영 장관의 영문 이니셜)계는 지극히 폐쇄적이고 퇴행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실용주의를 내세우기 때문에 비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총선 이후 다수당을 차지한 그 좋던 초창기 4개월을 기간당원제를 폐지하기 위해 허송세월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문제가 생기는 지역은 구 당권파에 속한 곳이다. 지금은 당을 바르게 건설하는데 그들과 연대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로 변했다.” 유 의원은 무척 격해졌다. 그는 여러 차례 “실용주의도 인정한다. 그쪽이 정당 개혁만 좋다면 협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간당원제를 근간으로 한 정당 민주화에서 이렇게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는 정동영 장관쪽과 타협은 불가능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자연히 그 대안은 김근태 장관쪽과 연대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지향하는 정당 개혁을 위해 연대할 수 있는 세력은 GT(김근태 장관의 영문 이니셜)계밖에 없다. 손잡고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분파 투쟁도 아니다. 우리는 당헌당규를 준수하고 시도당에 그에 따른 민주적 지도부를 구성하려는 것이다. 시도당을 바로 세우고, 정당 개혁에 진취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당선되도록 하기 위해 시도당 대회에서 국민정치연구회에 속한 재야파 인사들을 밀고 있는 것이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서도 이런 자발적 연대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현재 김근태 장관쪽과의 연대가 2007년 대선 전까지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언하지 않았다. “다음 선거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은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 시기의 전당대회가 어떤 의미가 있느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느냐, 그것에 따라 정리되는 것이다.”

그는 4월2일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적 정당을 조직하고 건설하는 ‘건설현장 감독’을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의장이 돼 뭘 하겠다는 생각이 각자 다른데, 나는 지금은 민주적 정당 조직을 건설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그 건설현장 감독이 필요한 것이다.”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당의장으로 그 현장감독을 꿰차야 하는지에는 ‘적임자론’을 역설했다. “참여형 정당, 기간당원 정당, 백년 정당, 개미정당, 진성당원 정당 등을 개념화하고 설계도를 그린 사람은 바로 나고, 내가 버터 제도로 도입했다. 하지만 설계도를 그리고 제도를 도입했다고 집이 다 지어진 게 아니다. 설계도를 따라 현장을 지휘할 사람, 정확히 집 지을 사람인 내가 당의장의 적임자다.”

김근태 쪽과의 연대, 대선까지 갈까

물론 열린우리당에서는 유 의원의 ‘기간당원에 의한 정당 개혁론’이 다른 주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핵심 당직자는 “당 민주화, 당원에 의한 당 장악은 모든 당의장 출마자들의 기본적 주장”이라며 “유 의원이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실제 유 의원을 비롯한 개혁당 그룹을 ‘당권 투쟁을 일삼는 사이비 개혁주의자’로 몰아세웠던 국참연대도 ‘당원에 의한 당 장악’을 외치며 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유 의원은 “차별성이 별로 없다. 없으면 어떠냐. 객관적인 차이가 없어도 주관적으로 차이를 느끼면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지금은 단순히 외치는 게 아니라, 실제 기간당원들이 당을 민주적으로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좋은 사람을 뽑고 격려·견제·평가하면서 집행하는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이번 전당대회가 “당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판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자, 상층과 하층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나는 위에 없다. 3월10일 당의장 예선에서 국회의원 150명 가운데 아무리 많이 얻었어도 30명을 못 넘겼다. 그러나 밑바닥 당원과 대의원들에게는 그 몇배의 지지를 받고 있다. 왜 당의 하층부에서 지지받는 사람이 상층부로 가면 ‘따’를 당하냐. 바로 정당 내부에 파워 시프트가 일어나는 과도기 상황에서 그 파워 시프트를 기획한 사람을 거르려 하기 때문이다. 이번 경선은 낡은 정당 문화와 새 정당 문화의 싸움, 직업 정치인이 당원을 어느 정도 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력과 정치인의 운명을 당원에게 온전히 맏겨야 한다는 세력의 싸움이다.”

그는 전당대회에서 5명의 선출직 상임중앙위원단 진입을 자신했다. “지금 각 캠프의 여론조사에서 나와 김두관 장관은 확연하게 4위 안에 든다. 그 밖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단일성 집단지도 체제를 구축한 지도부에 김 전 장관과 함께 진입할 수 있고, 단일화 없이도 내가 1등을 할 가능성이 있다.” 당의장까지 넘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당의장이 되면 정당 문화를 근본부터 바꾸겠다고 말한다. “입법은 원내대표가 도맡으면 된다. 당의장은 시도당, 당원협의회 등 각 지역의 현장에서 당 건설을 위한 현장감독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앙집권형 조직 구조인 현재 중앙당의 실·국 체제를 업무 중심으로 재편해 시도당 업무 지원을 위한 서비스센터로 바꾸고, 회계·주요 공직 선거 후보 발굴, 당원 관리 등 정당의 핵심 업무도 시도당으로 이관하겠다고 밝혔다. 당의 정체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당헌당규에 따라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의결하고, 의원 총회에서 당의장으로 인사말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국민참여연대와의 갈등 및 분화 논란과 관련해 “대선 때는 함께한 적이 있지만,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정당 개혁을 위해 한번도 같이한 적이 없는데 분화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국참연대가 자신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국참연대에 지지를 부탁한 적도 없고, 별 적대감도 없다”면서 “사사로운 감정으로 나를 공격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그는 또 염동연 의원 등 일부 당의장 후보들이 제기한 민주당과의 합당론에 대해 “민주당과 갈라서면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를 얻고 독식할 것이라는 주장은 정태적 관점이다. 독자적으로 한나라당과 지지율 격차를 두 자릿수 이상 벌리면 승리할 가능성이 충분한데 그런 시도도 않고 합칠 생각을 하는 건 인정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독자적 노력도 안하고 합당이라니

논란의 주체이자 대상인 유 의원의 정치적 앞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노무현의 삼별초, 타고난 싸움꾼에서 기간당원에 의한 정당 개혁을 주도할 안정적 리더로 보직 변경에 성공할 것인가. 그의 정치적 운명은 4월2일 전당대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1만3천여명의 대의원 손에 달렸다. 유 의원은 “나는 도구일 뿐이다.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은 내가 인격적으로 훌륭하거나 강한 카리스마가 있어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내세운 주의·주장, 정치적 메시지, 지향점에 동의한 것이다. 이것을 잃는 순간 정치인 유시민은 끝난다. 내가 민주적 정당을 건설할 적임자이니 선택해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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