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장기 분란의 원인은 무엇인가…국민 여론과는 달리 지지자층에선 강성 노선이 인기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행정중심도시법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분란이 장기화하고 있다.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등 수도지키기투쟁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3월19일(부천), 3월26일(안양), 4월 초(서울역 광장) 등의 장외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당 지도부가 “일부 의원들이 국회 밖으로 나가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김무성 사무총장)고 만류하지만 좀처럼 먹혀들지 않고 있다. ‘한 지붕 두 가족’ 양상이 끝없이 이어지는 셈이다.
지지층 여론조사에선 홍준표 부각
정당 내부의 노선 논쟁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행정도시법의 경우 의원총회 표결을 통해 찬성 당론이 확정됐다(2월23일 찬성 46표 대 반대 37표). 그럼에도 ‘아쉽지만 승복’하면서 다음 단계로 진도를 나가지 않는 것은 정당문화에서 드문 일이다. 2001년 새천년민주당에서도 김대중 총재의 당적 이탈과 함께 극심한 분란이 일었지만, 의원 연찬회 등을 통해 그때그때 새로운 합의를 다져나간 바 있다. 그에 비춰볼 때 최근 한나라당의 장기 분란은 치유법이 마땅치 않은 ‘노인성 만성 질환’으로 비유할 만도 하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분란이 장기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류든 비주류이든 어느 한쪽으로 좀처럼 대세가 잡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사회여론연구소(소장 김헌태·ksoi.org)가 3월15일 실시한 여론조사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전국 성인남녀 700명 상대 전화조사. 95% 신뢰수준에서 오차한계 ±3.7%).
연구소는 “다음과 같은 한나라당의 정치인 중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2명만 선택해주십시오”라고 물었다. 이 문항은 사실 <한겨레21>이 연구소쪽에 요청해 정례 여론조사의 일부로 포함시킨 것이었다. <한겨레21>은 정당을 가게로 비유할 때 ‘진열된 상품이 좋고 종업원들이 말쑥하며 친절해야 손님이 많을 것’이라고 보고 ‘한나라당 주요 정치인들의 매력지수’를 측정하려 했다. 이를 위해 언론 노출도가 높은 주요 활동가 11명을 추렸으며,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를 비롯한 대권주자는 일부러 뺐다.
그 결과 주요 의원들의 매력지수가 전반적으로 낮았고 김문수(14.0%), 남경필(13.3%), 김덕룡(13.2%), 홍준표(12.3%), 원희룡(11.1%) 의원 등이 그런대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중위권에는 전여옥(9.0%), 강재섭(8.4%), 박세일(6.7%) 의원이 포진했다. 하위권, 즉 ‘매력 없는 사람’으로는 정형근(5.4%), 김용갑(4.2%), 이재오(3.9%) 의원이 꼽혔다.
이 문항을 한나라당 지지자들만을 상대로 다시 분석했다. 그 결과 상위권에 홍준표(20.5%), 강재섭(17.6%), 김문수(17.3%), 남경필(14.4%), 전여옥(14.3%), 김덕룡(13.8%) 의원 등이 꼽혔다. 중·하위권은 원희룡(9.5%), 김용갑(8.0%), 박세일(6.8%), 정형근(6.5%), 이재오 의원(3.6%)의 순서로 나타났다.두 가지 결과를 비교하면 홍준표 의원이 지지층 조사에서 단연 선두로 뛰어오르는 현상이 눈에 띈다. 홍 의원은 “야당답게 투쟁하는 야당”(선명투쟁 노선)을 외치는 ‘강성 비주류’의 선봉격 인물이다. 그런 캐릭터의 인물이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 시장’에선 그저 그렇다가 ‘지지자 시장’에선 유력한 상품으로 훌쩍 뛰어오르는 것이다. .
대구 출신인 강재섭 의원도 일반 국민보다는 ‘지지자 시장’에서 빛을 발하는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반면에 행정도시법에 찬성했으며 ‘정책경쟁 야당 노선’을 걷는 남경필, 원희룡 의원은 일반 국민한테는 호감을 사지만 ‘지지자 시장’에선 순위가 하락한다.
이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 의원들의 일차적 선택은 간명해진다. 즉, 어설프게 정책경쟁, 대화와 타협을 거론하기보다는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빡세게’ 투쟁하는 게 당내 입지를 넓히는 지름길이다. 정치에선 흔히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구하기 이전에 지지층 안에서 기반을 확고히 하는 게 롱런을 보장받는 길로 통한다.
따라서 행정도시법 갈등은 장기화하기 십상이다. 수도지키기투쟁위원회의 ‘선명투쟁 노선’이 한나라당 지지층 사이에서 호감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수투위 의원들은 당론 불복이라는 절차상 흠결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명분을 당내에서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다.
선명투쟁파, ‘안방 정치’의 한계
홍준표식 ‘선명투쟁 노선’은 미국 부시 대통령의 1급 정치참모인 ‘칼 로브의 길’과도 통한다. 칼 로브는 선명한 보수주의 기치를 내걸고 전통적인 보수층을 강렬하게 결집하는 전략을 구사해 부시의 재선을 이끌었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선 행정도시법 처리를 여야가 합의한 것에 대해 ‘잘한 일’ 55.6%, ‘잘못한 일’ 36.9%로 조사됐다. 행정도시법 통과 사실에 대해선 ‘잘한 일’ 41.4%, ‘잘못한 일’ 49.1%의 결과가 나왔다. 즉, 행정도시법 자체에는 반대가 약간 우세하지만, 기왕에 합의된 결과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국민여론이 확인된 셈이다.
이 결과와 비교하면 선명투쟁파들의 행동에선 ‘안방 정치’의 한계가 금세 드러난다. 즉, 지지자들한테는 환호를 받지만 좀더 넓은 중도성향 유권자들한테는 외면당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소의 같은 조사에선 한나라당은 수구정당이란 응답이 45.1%, 건전 보수정당이란 응답이 40.7%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여전히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연구소의 한귀영 연구실장은 “한나라당 지지율이 오를 때는 영남 중심의 결집도가 강화되고, 지지율이 떨어질 때는 영남 결집도가 약화되는 현상이 관찰된다”고 말했다. 영남인들이 뭉치느냐, 이완하느냐에 따라 당 지지율이 오르내리는 현상은 정당으로서 바람직한 게 아니다. 고정 지지층을 기반으로 하되, 비영남 중도성향 유권자들한테도 매력을 발휘해야 정상이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지난 2월 초 “이대로 가면 2007년 대선에서 250만표 차이로 필패한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문제의식이었다.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 ‘정책경쟁파’들은 진보와 보수 양쪽의 합리적 견해를 모두 취해 중도보수로 치고 나가자는 주장에 가깝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을 이끈 정치 컨설턴트 딕 모리스의 ‘외연 확장론’과 흡사하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도 최근 같은 대열에 가세했다.
연구소의 조사결과는 ‘정책경쟁을 주장하는 당 지도부의 입장에 공감한다’ 49.9%, ‘선명야당을 주장하는 3선 그룹에 공감한다’ 28.0%로 나타났다. ‘일반 국민 시장’의 대세는 단연 정책경쟁 노선이다. 그러나 정책경쟁파들은 여전히 지지자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정책경쟁과 선명야당 사이에서…
한나라당 내부 갈등의 기본 코드는 강성 투쟁으로 지지자를 결집할 것이냐, 아니면 중도성향 유권자를 잡기 위해 드넓은 ‘중원’으로 나아갈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이다. 즉, 칼 로브의 길을 따를 것이냐, 딕 모리스를 벤치마킹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이런 선택이 2007년 대선 전략으로 가는 첫걸음임도 의심할 여지가 적다.
미국 대선에선 시대상황에 따라 딕 모리스와 칼 로브가 모두 성공했다. 따라서 어느 하나가 정답이라고 주장하긴 어렵다. 다만 뭐가 되든 답을 선택해 한쪽으로 가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은 그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기 어려운 복잡한 처지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행정도시법으로 불붙은 내부 갈등이 악성 장기 분란으로 가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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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게 한나라당의 쇼윈도를 들여다본다. ‘디스플레이 센스하고는…, 쯧!’ 이런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도저히 요즘 스타일이라고 볼 수 없는 물건들이 떡하니 전시되어 있다. 저 옛날, 그러니깐 정확하게 호주제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그 옛날에나 쓸 법한 물건, 간첩 잡는다고 멀쩡한 사람 두들겨 패던 시절의 물건들이 쇼윈도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저 물건들을 보니 전두환 시절 더 나아가 박정희 시절에 생긴 가게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된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이 가게에는 싸움이 그칠 날이 없다. 오늘도 여전히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일인지 알 수는 없으나 가게와 관련된 사람들끼리 치고받고 난리다. 언제 쓰러질지 모를 정도로 낡은데다, 그다지 찾는 사람도 없는 가게에서 여기저기 편갈라 싸우는 모습이 가관이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고함 때문에 더 이상 이 가게에서 물건을 살 수 없을 정도다. 결국 불쾌한 마음만 가득 안고 가게를 나온다.
이것이 바로 한나라당이 매력 없는 이유다. 너무 낡아 다 쓰러져가는 가게, 전시된 물건들이 형편없는 가게, 손님이 쳐다보는 앞에서 점원들끼리 싸우는 가게에선 그다지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처럼 한나라당도 그렇다. 좋게 봐주려고 해도 그럴 마음이 싹 가신다. 너무 오래된 정당, 구태의연한 행동을 하는 의원들이 항상 언론에 나오고 이제는 편을 나눠서 싸우는 한나라당이 매력이 있다고 하면 이상할 정도다.
그렇다고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지나치진 말자. 낡음은 옆 가게처럼 리모델링으로 새롭게 바꾸면 되는 거고, 잘 보이진 않지만 신선하고 쓸 만한 물건들을 꽤 많이 찾을 수 있기에 매력 없다고 버리지 말고 가게 주인이 매력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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