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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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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는 재미’가 좋아서…

등록 2005-02-17 00:00 수정 2020-05-03 04:24

[뉴스인물 다시 보기 | 이기명]

열린우리당에 정식 입당한 대통령 전직 후원회장 이기명씨… ‘평당원 정치’의 저력과 가능성 보여줘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이기명(69) 고문이 요즘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는 여권에서 보통 ‘이 회장님’으로 불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후원회장을 15년간 지냈으며, 그 뒤론 이렇다 할 직함이 없는 탓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12월9일 오랜 ‘장외 훈수꾼’ 시절을 마감하고 열린우리당에 정식 입당했다. 노사모 회원을 주축으로 결성된 국민참여연대에 고문으로 참여해 명계남, 이상호씨(아이디=미키루크)와 함께 조직을 이끌고 있다.

“노무현 성공 위해 애프터서비스”

그가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정당 정치’ 일선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그는 <한겨레21>에 “열린우리당에 ‘노무현 부대’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당정 분리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워낙 자신의 계보라 할 당내 정치세력이 거의 없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각기 상도동, 동교동계를 이끌었던 바와 다르다. 이 고문은 “당에 이질적인 세력이 많다 보니 노 대통령이 대선후보 이래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느냐”라고 말했다. ‘노무현의 성공’을 목표로 살아온 게 자신의 인생인 만큼, 대통령이 된 뒤까지 ‘애프터서비스’를 하겠다는 명분을 그가 잡은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명분과 함께 개인적 이익도 추구하는 법이다. 이 고문도 ‘정치 활동’에 따른 ‘보상’을 기대하긴 마찬가지다. 다만 그는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쓰면 ‘이기명 선생님 생각을 지지합니다’라는 등의 댓글이 꼬리를 물고 올라올 때 너무 즐겁다”며 “남들이 나를 알아준다는 느낌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목소리를 내고, 이에 따라 ‘울림’이 퍼져나가는 것이 그에게 가장 큰 보상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 ‘노사모 동지들에게’ ‘국참연대를 두려워 하지 마라’ 등의 정치 논설을 수시로 기고한다. 그는 ‘김삿갓의 북한 방랑기’를 쓴 방송작가 출신으로 나름의 필력을 인정받는 편이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는 동기는 대개 △권력 또는 고위직 추구형 △(나라를 반드시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 도취형 △(은근한) 대가성 기대형 등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 고문의 사례를 보면 여기에 ‘참여의 재미 추구형’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는 노무현 정권의 실세 중 한 사람이면서도 “나는 책임자로서 조직을 이끌 능력은 없는 사람”이라며 “공직을 맡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그의 활동은 ‘평당원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또는 주요 당직을 맡지 않고도 그가 나름의 정치적 실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의 전직 후원회장’이라는 상징성을 갖춘데다, 인터넷 공간들이 활짝 열렸다는 점이 그에겐 유리한 조건이다.

두어달에 한번꼴로 대통령과 식사

그가 참여한 국민참여연대는 ‘열린우리당 접수’에 이어 ‘정권 재창출’에도 앞장서겠다는 생각이다. 그에게 노 대통령과의 의논 여부를 물었다. 이에 그는 “입당이건 그 뒤의 활동이건 대통령과 의논한 바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특정 사안이 있을 때 대통령의 생각을 짐작해보고 나중에 결과를 보면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며 “워낙 오래 고락을 함께한 덕분 같다”고 말했다. 이심전심으로 코드가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이 고문 부부는 노 대통령 부부와 두어달에 한번꼴로 청와대 관저에서 식사를 함께 해왔다. 공연히 마음이 허전할 때 노 대통령이 그를 찾았다. 그 밖에는 예를 들어 탄핵 따위로 노 대통령이 잔뜩 속상해 있을 것 같다 싶을 때 이 고문이 전화를 걸어 위로하는 적이 간혹 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그에게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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