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의원들은 초강경 분위기지만 합당 가능성은 여전… 열린우리당 4월 전당대회가 분기점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민주당이 지난 2월3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분당세력인 열린우리당과 합당 반대’를 내건 한화갑 대표 중심의 단일지도 체제를 선택하면서 그동안 정치권을 달궜던 합당 논쟁은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초지일관 분당 세력과의 타협을 반대해온 한화갑 후보와 열린우리당과의 합당 가능성을 열어놓은 김상현 후보간 양자 대결로 치러진 이번 경선에서 민주당 대의원들은 한 대표에게 83.1%의 몰표를 던져, 합당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대의원들은 이날 투표에 앞서 ‘열린우리당과의 합당 반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합당이나 당을 해산할 경우 중앙위원회에 권한을 위임할 수 없도록 하는 ‘권한 위임의 건’도 통과시켜 합당 논의를 봉쇄하기 위한 이중의 잠금장치까지 마련했다.
호남 유권자 상당수 합당 원해
그러나 민주당 대의원들의 초강경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합당론’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첫째, 한화갑 대표가 내건 ‘분당세력과의 합당 반대론’은 대의원들의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지만 현역 의원들의 정치적 이해와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다른 한 핵심 인사는 “현재 민주당적을 유지하고 있는 대의원들은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가장 강력한 사람들”이라며 “한 대표에게 쏠린 몰표는 대의원들의 이런 성향이 반영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오히려 “민주당 안에서 합당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현역 의원은 한 대표와 비례대표인 이승희 의원 정도고, 김효석·이낙연 의원 등 나머지는 당장은 아니지만 합당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 향후 주요 선거 일정을 감안할 때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모두 합당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정치적 불가피성이 존재한다. 지금처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지지층을 분할하는 구도가 이어질 경우 4·30 재보선, 10월 재보선,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두 당 모두 고전할 것이고, 이렇게 불리한 구도를 지속하는 데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합당은 어느 한쪽의 요구나 반대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면서 “두 당의 지도부와 당원들 사이에 정치적·정서적으로 필요한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논의가 가열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핵심 당직자도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계속 어부지리를 얻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두 당 모두 지지자들로부터 합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지도부도 합당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셋째, 두 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 유권자의 상당수가 내심 합당을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여론사회연구소가 지난 1월26일 700명의 유권자를 상대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전체 응답자의 58.1% 반대, 33.5%가 찬성한다고 말했다. 합당에 대한 반대 의견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광주·전라 지역 유권자들은 찬성(53.7%) 의견이 반대(41.5%)를 크게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실장은 “호남 유권자들은 민주세력 대통합이라는 대의명분을 갖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합당을 크게 배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민주세력 대통합’이 공론화될 경우 호남 유권자들이 지지하고 나설 기본 토양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두 당의 합당 시도가 구체화될 것인가. 정치 지형의 변화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뒤얽힌 ‘합당의 정치학’을 정확하게 풀어내기는 쉽지 않다. 다만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안팎에서는 세 가지 유력한 합당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합당의 정치학’ 세 가지 시나리오
먼저, 한화갑 대표의 정치적 구상에 따라 합당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지금까지 민주당 독자생존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각종 선거전에서 열린우리당이 패배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이 겹칠 경우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열린우리당은 분열될 것이고, 민주당 출신들은 다시 호남 지지 기반이 뚜렷한 민주당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이른바 ‘민주당 몸통론’이 독자생존 구상의 핵심 골격이다. 물론 한 대표의 구상이 현실화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독자생존 전략이 실패해도 한 대표는 별로 손해볼 게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 대표쪽 사정에 정통한 민주당 관계자는 “독자생존을 고집할 경우 민주당도 각종 선거에서 참패할 수 있지만 정권 재창출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낀 열린우리당에서 합당 요구가 한층 고조되면서 민주당과 한 대표의 몸값도 훨씬 더 뛸 것”이라며 “한 대표의 최선책은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한 뒤 열린우리당의 민주당 출신들을 흡수해 독자적 승부를 펼치는 것이지만, 몸값을 최대한 올린 뒤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합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2007년 대선 승리를 위한 ‘그랜드 디자인’을 추진하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노 대통령이 민주당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다 적절한 시점에 ‘개혁세력의 정권 재창출’을 명분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협조를 구한다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개혁세력 통합론”에 동의할 경우 한화갑 대표의 독자생존 전략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안팎에서는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와 가까운 문희상 의원이 4월2일 전당대회에서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선출될 경우 노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 이런 시나리오를 구체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동교동 사정에 정통한 한 전직 의원은 “합당의 최대 변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며 “쉽게 나서지 않겠지만 자신의 한마디가 2007년 대선의 향배를 결정할 정도로 극한점에 다다를 경우 합당 지지를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 경우 영남권의 역풍 등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열린우리당이 김효석·이낙연 의원 등 합당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민주당 현역 의원과 추미애·장성민 전 의원 등 상징성이 큰 정치인을 영입해 한 대표 중심의 민주당을 고사시키는 시나리오다. 이 방안은 민주당과 무리하게 당 대 당 통합을 추진할 경우 부닥칠 개혁당 그룹과 영남지역 당원들의 반발 등 여권의 내분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 한 대표가 2월3일 전당대회에서 부대표 3명을 직접 임명할 수 있는 임기 2년의 단일지도 체제를 구축하면서 추미애 전 의원 등이 민주당을 통해 정치적 재기를 도모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분석도 더해진다. 여권은 최근 추 전 의원과 장성민 전 의원을 상대로 다각적인 설득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4월2일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결과가 한 대표 체제 출범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간 합당 논의를 다시 가열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당 의장 경선에 나선 후보들은 어떻게든 합당론에 대해 의견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권의 기간당원 가운데 과거 민주당 출신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고, 2006년 지방선거 출마를 염두에 두고 기간당원 확보에 총력전을 펼친 수도권 및 호남지역 출마 예정자의 현실적 요구에 답해야 하는 것이다. 염동연 의원이 “합당 전도사”를 자임하며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지방선거와 대선 승리를 위한 합당론을 역설하고 있는 것도 다른 후보들에게 압력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당대회 때는 입장 표명해야 할 상황
당장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개혁당 그룹의 김원웅 의원은 “합당에 대한 의견 표명을 요구하는 당원들이 적지 않다”면서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총의를 물어 합당 문제를 결정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야파의 장영달 의원도 “우리쪽에서 합당론을 강하게 제기해 민주당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일을 그르칠 우려가 있다”면서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한 뿌리라는 공감대 형성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희상 의원은 “반대자가 많고 이해가 다르다”면서 합당론 제기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호남 및 수도권 대의원들의 합당 요구가 거세질 경우 문 의원도 적극적인 역할을 자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열린우리당의 4월 전당대회가 잠시 물밑으로 가라앉은 합당 논쟁의 불씨를 되살리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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