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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폭풍 속의 고요

등록 2005-01-13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계파 지분 고루 배분된 집행위원회 출범으로 일시 안정…전당대회 등을 앞두고 충돌의 불씨 여전</font>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개혁입법 좌절에 따른 지도부 총사퇴와 계파간 갈등으로 ‘빅뱅’이 예고됐던 열린우리당이 임채정 의원 중심의 집행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안정을 찾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국가보안법 폐지론과 절충론, 실용주의와 개혁강화론 등으로 사사건건 대립해온 여당의 각 계파는 모처럼 당 단합과 경제민생 주도를 합창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의 평화’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계파간 ‘휴전’의 결과물로 출범한 당 집행위원회가 헤쳐나가기에는 힘겨운 난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당 상층부와 당원의 ‘이질화 현상’

당장 지난 1월6일 출범한 집행위원회를 놓고 원내인사 중심의 계파적 이해와 개혁 지속을 주문해온 열성 당원들 사이에 갈등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여당 지도부의 총체적 붕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우려한 당내 각 계파는 집행위원회 구성에 상당히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특정 계파에 대한 호불호가 적고 당권 도전 의지가 없는 임채정 의원이 의장을 맡았고, 당권파(김한길 의원), 재야파(김태홍 의원), 개혁당 그룹(유기홍 의원),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류재건 의원) 등 주요 계파가 당 지도부에서 자기 지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4월 당권 투쟁에 관심이 집중된 각 계파의 처지에서 보면 ‘싫지 않은 조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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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열성 당원들은 각 계파 대표자들의 5일 밤 ‘심야회동’을 통해 구성된 집행위원회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저항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밀실야합’ ‘계파간 각본에 따른 나눠먹기’ ‘정파간 오합지졸 모자이크’라는 성토가 터져나오고 있다. 당원들의 분노는 개혁당 그룹의 좌장으로 당 안팎에서 ‘강성개혁파’로 분류됐던 유시민 의원에까지 미치고 있다. ‘심야회동’에 참석한 데 대한 당원들의 비판이 쏟아지자 유 의원은 “저와 중앙위원들이 어떤 밀실야합도 계보정치도 나눠먹기도 한 바 없다”고 해명의 글을 올렸지만 분노한 당원들의 요청에 따라 삭제된 것이다.

노사모, 국민의 힘을 중심으로 한 ‘장외 친노세력’의 대표 격인 국민참여연대쪽의 반발도 거세다. 국참연대를 주도해온 정청래 의원은 “백번 양보해 몇몇 정파들이 모여서 임시지도부안을 내놓았더라도 그 정파와 선이 닿지 않는 중앙위원들에게는 최소한 설명을 한 뒤 의결을 해야 한다”면서 지도부 구성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당원들 사이에 논쟁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여당 안에서 전략통으로 꼽히는 수도권의 한 의원은 “이런 구도로는 당의 정체성을 살려내기 어렵다”면서 “앞으로 원내대표 경선, 당 의장 선거 등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개혁적인 열성 당원들과 현역 의원 중심의 현실정치 세력간의 괴리 현상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주요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계파간 봉합을 통해 지도부를 구성한 당 상층부와 일반 당원의 요구가 충돌하는 ‘이질화 현상’이 확대될 경우 여당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는 만큼 적절한 해소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당대회를 겨냥한 당권경쟁은 어디로

하지만 이달 말로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 2월 임시국회, 4월2일로 예정된 전당대회 등 산적한 정치 일정을 염두에 둔 계파간 이해관계를 볼 때 이런 ‘이질화 현상’은 쉽게 극복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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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월28일 치러질 원내대표 경선을 두고 당내 각 계파는 일단 뭉치는 듯한 분위기다. 정책통인 정세균 의원을 사실상 ‘단일후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중진그룹의 대표주자로 출마가 예정됐던 배기선 의원, 정동영 통일부 장관 중심의 ‘당권파’쪽 유력주자인 김한길 의원 등이 출마를 포기했다. 그러나 원내대표로 내세울 만한 경쟁력 있는 인물을 찾지 못한 당내 각 계파들이 집행위원회 구성을 통해 당권을 나눠먹은 것처럼 일종의 정치적 담합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동영 장관 등 당권파는 김한길 의원의 출마를 권유했지만 김 의원이 고사했다. 개혁당 그룹도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보안법 절충론을 주도하며 당내 발언권을 확대했던 중진 그룹은 직접 원내대표 경선에 나설 경우 닥칠 농성파 의원들의 반발 등 역풍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당권파와 대립각을 세워온 김근태 의원 중심의 재야파도 장영달·유선호 의원 등을 출마시켜 ‘정면승부’를 펼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지만, 승리를 자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실용파를 자처해온 ‘안개모’에서는 안영근 의원이 출마를 공언하고 있지만, 세 결집이 쉽지 않다.

결국 당내 대다수 계파들은 섣불리 원내대표 경선에 뛰어들어 상처를 입기보다는 계파적 특성이 불분명한 정세균 의원을 지원하고, 원내대표단 구성 과정에서 지분을 확보하는 실리 챙기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만, 당 지도부 구성에 이어 원내 사령부까지 계파간 담합으로 나눠먹는 모습이 현실화될 경우 당원들 사이에 강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각 계파들 모두 상당기간 눈치보기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재야파 일각에서 중진 그룹의 배기선, 당권파의 김한길 의원이 잇따라 출마를 포기한 것과 관련해 ‘정세균 의원을 매개로 한 당권파와 중진 그룹의 연합 의혹’ ‘청와대의 교통정리설’ 등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변수다. 공론화 여부에 따라 열린우리당의 분열과 갈등이 재발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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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일 전당대회를 겨냥한 당권 경쟁도 여당의 ‘일시적 평화’를 깨뜨릴 수 있는 핵심 요인이다. 당권파쪽은 신기남 전 의장이 출마를 고심하는 가운데 ‘문희상 의원과의 연대론’도 제기되고 있다. 개혁당 그룹은 김원웅·김두관 의원이 경쟁하고 있다. 득표력을 높이기 위해 ‘유시민 의원 출마론’도 계속 제기된다. 재야파 인사들은 유력한 카드로 검토했던 임채정 의원 출마론이 좌절되면서 장영달 의원을 대안으로 모색하는 등 활로 찾기에 분주하다. 문희상·한명숙·염동연·김혁규 의원 등 중진들도 맹렬히 뛰고 있고, 한나라당 탈당파인 김영춘·김부겸 의원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

재야파와 개혁당 그룹 총력전

이들은 서로 승리를 자신하며 이미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재야파와 개혁당 그룹은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짜이는 당 상층부와 달리 기간당원들은 개혁 지향성이 강하다는 판단 아래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여당 안에서는 당권파와 중진 그룹이 문희상 의원을 중심으로 연대할 경우 재야파와 개혁파 등이 우리당 정체성을 훼손한 실용주의자들에 대한 심판을 통한 개혁 지도부 구성을 외치며 연대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여당 지도부의 붕괴에 따른 혼란과 공멸을 피하기 위해 최근 형성된 ‘여당의 평화’는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는 ‘불안한 휴전’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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