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지향성에 ‘빽’ 신봉 기질 타고났지만 보수주의 환골탈태 주장… 그러면서도 “간첩 암약” 사고쳐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주성영(46·초선·대구동갑) 한나라당 의원이 TK 정치세력의 새로운 기수로 떠오른다?
그는 대구 지역 언론에서 정력적으로 분투하는 신흥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다. 지역 유력지들은 그를 ‘제2의 홍준표가 될 재목’ 등으로 묘사한다. 그가 쏟아낸 ‘386은 항상 시원한 그늘에서 노는 베짱이’ ‘NGO는 기생층’ ‘이철우 의원은 간첩으로 암약 중’ 등의 전투적 발언이 지역 정서에 어필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신현확 전 국무총리,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작고) 등으로 상징되는 올드 TK가 떠난 빈 공간을, 주 의원을 비롯한 뉴 TK가 대체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음주운전 도주·봉합 사건의 기억
그렇다면 그는 전통적인 영남 보수 정치세력 지도자들과 어떤 점은 같고 어떤 점이 다를까?
우선 그는 권력이나 정치 또는 관청 지향성을 강하게 보여왔다는 점에서 TK의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는 것 같다. 그는 울진중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경북고 1학년 때는 부학생회장에 출마해 낙선했으며, 2학년 때는 총학생회장에 도전하다 친구인 권오을(현 한나라당 의원)과 경합하게 되자 중도포기한다. 이어 학생회 해체 뒤 학도호국단 대대장이 됐다.
고려대 재학 중에는 총학생회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검사 때는 70명의 회원을 둔 동기회 회장으로 나서 15년째 현직을 고수하고 있다. 2001년에는 대구지검 평검사협의회 회장이 됐다.
그는 일찍부터 선거만 있으면 모두 도전해 조직의 대표를 차지하고자 했다. 리더 지향성, 정치 지향성에다 상공인의 길보다는 ‘관청 일’을 선호하는 경향 등은 흔히 ‘TK 기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역 연고주의와 인맥을 적극 활용하는 점도 비슷하다. 그는 초임 검사로 춘천지검에 근무하던 1991년 음주운전 도주·봉합 사건을 빚었다. 당시 그는 춘천시 후평2동 보안파출소 옆을 술에 취한 채 차를 몰고 지나다 수상히 여긴 파출소 직원의 신고로 순찰차의 추격을 받게 된다. 그는 순간적으로 기민한 판단을 내려 인근 동부동 파출소로 차의 방향을 돌린다. 동부동 파출소 소장은 그의 울진중 선배였다고 주 의원은 인터뷰에서 밝혔다. 순찰차에 쫓기는 ‘긴박한 상황’에 중학교 선배를 찾음으로써 그는 사건을 봉합하는 데 일단 성공한다.
전주지검에 근무하던 1998년에 또 한번의 음주 사고가 벌어진다. 그는 관내 공안기관 간부 회식에서(설화 한 순배 및 폭탄주 4잔 상황) 국정원 간부와 사소한 말다툼 끝에 술병을 집어든다. 이어 내리친 것이 말리던 사람(유종근 전북지사의 비서실장 박영석씨)의 이마를 찍어 눈썹 주위가 6cm쯤 찢어지도록 했다.
그는 대검 감찰부 조사 끝에 천안지청으로 전보되는 경징계로 ‘검사 생명’을 잇는다. 그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하던 김중권 선배의 덕을 좀 봤다”고 밝혔다. 김중권씨는 울진중, 고려대 법대 선배이다. 세상을 눈 아래로 깔아놓고 보는 기고만장함의 이면에, 든든한 ‘빽’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았던 셈이다.
올드 TK 또는 전통적인 영남 보수세력과의 차별성도 그는 분명히 갖고 있다.
그는 김용갑·이방호·최병국 의원이 주도하는 한나라당 내 ‘전통 보수’ 모임인 자유포럼 가입 제의를 거절했다. 그는 자유포럼과 정형근 의원 등에 대한 논평을 기자가 요구하자 “그분들은 그 시대에는 옳았으며 역할이 있었지만 지금은 맞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세대 교체는 당위 이전에 필연”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수구꼴통과 뭐가 다르냐
그는 그 대신에 김문수·이재오·홍준표 의원 등이 이끄는 국가발전전략연구회의 열성 멤버이다. 국가보안법 당론 토론 과정에서도 그는 일점일획도 고쳐선 안 된다는 쪽에 가까운 자유포럼의 주장에 반대했다. 국가보안법의 이름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국가안전보장법으로 바꾸자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호주제, 간통죄, 사형제를 모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점에서 “나는 전향적”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영남 보수세력이 유림·노년층을 의식하는 회고적 보수주의를 지향한다면 그는 보수주의의 환골탈태를 외치는 쪽이다.
그는 국회 입성 뒤 첫 의원총회에서 “나는 두번의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찍지 않았음”을 커밍아웃했다고 한다. 1997년에는 김대중 후보를 찍었으며, 2002년 대선에는 기권했다고 그는 기자에게 밝혔다. 그 이유는 “이회창 후보는 ‘귀족’이라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주 의원의 ‘뉴 TK 정치’는 앞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주 의원은 지금까지 ‘전투성’을 주요 상품 또는 전략으로 삼아온 듯하다. 그는 최근 당 지도부가 ‘이철우 간첩 암약’을 쏴줄 저격수를 물색할 때 다른 의원들이 몸을 빼는 것과 달리 흔연히 악역을 맡았다. 직선적인 성격도 작용했다.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르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주 의원도 ‘간첩으로 암약 중’이라는 근거를 갖고 있진 않았다. 따라서 ‘오버’한 것이었다. 그는 최초 발언 직후 “(사법적 엄밀성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수사였다”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기자에게 “정치적 수사라며 후퇴한 데는 사실상 사과의 뜻이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이른바 보수세력을 수구꼴통으로 몰아붙이는 세태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그러나 ‘간첩 암약’ 파동을 통해 그는 비판자들에게서 “과거의 수구꼴통과 뭐가 다르냐”라는 악평을 얻게 됐다. 그가 김용갑·정형근 의원 등과의 ‘차별성’을 추구해온 것과 달리, 실제 국민들한테는 그의 전투성만이 부각된 탓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간첩 암약 발언을 하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내가 잘못했구나. 지는 싸움을 했구나. 한나라당에 부담을 안겼구나라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정치적 곤경에 몰린 셈인데, 이와 관련해 그는 “(정치권이라는) 새 직장에 들어온 지 6개월밖에 안 된 상태에서 성장통을 겪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대목을 말하는 그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천정배 대표 고소한 상태
그러나 그는 열린우리당과의 ‘사상 싸움’을 중단하진 않겠다고 한다. 그는 ‘간첩 암약’을 둘러싼 정치 공방의 와중에서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자신을 비난한 것을 두고 ‘협박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그는 “지금 여론이 나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조만간 거품이 걷힐 것이다. 그때를 기다려 팩트(사실)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영 정치’의 중장기적 성공 여부를 점치긴 어렵다. 그러나 그의 행보가 영남 보수 정치세력의 새로운 조류를 일부 짐작케 하는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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