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명 확보한 열린우리당의 내부 계파경쟁… 경기도에선 확실한 우세지역이 뒤집히기도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과거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각 정당에 등록된 당원 수를 모두 합산할 경우 대한민국 전체 인구보다 많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던 시절이 있었다. 지구당 위원장이나 당료들이 당원 가입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명단을 취합해 무작정 당원으로 등록시킨 ‘페이퍼 당원’, 막걸리 한잔 얻어마시고 당원에 가입해주는 ‘막걸리 당원’ 때문이었다.
2004년 12월, 정치권에서 ‘페이퍼 당원’ ‘막걸리 당원’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지난 9월 ‘100년 가는 정당 건설’을 목표로 당헌·당규를 개정해 월 2천원 이상의 당비를 일정 기간 납부한 사람에게만 당원 자격을 부여하는 ‘기간당원’ 제도를 도입한 열린우리당이 10만 당원을 확보했다. 열린우리당보다 먼저 월 1만원 이상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당원 제도를 실시해온 민주노동당도 12월19일 현재 6만명의 진성당원을 확보했다.
열린우리당, 고양시에서 생긴 일
제 주머닛돈을 털어낸 당원들이 당 지도부는 물론 국회의원·시도지사 등 각종 선출직 출마 후보를 선정하는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정치 문화에도 상당한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과거 중앙 정치권의 실력자나 유력한 계파 보스에게 눈도장을 찍는 것이 정치적 성공의 지름길이었다면, 이제 각 지구당의 핵심 주축인 기간당원을 장악하고 그들의 민심을 얻는 게 필수 요건이 된 것이다. 지구당을 좌지우지하고, 핵심 당직자를 선출하는 대의원을 사실상 지명해온 현역 국회의원의 힘도 급속히 약화됐다. 아무리 유력한 실력자라도 치열한 기간당원 확보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정치적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무한 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내년 4월2일로 예정된 당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를 염두에 둔 당내 각 계파들이 당원 확보경쟁에 발벗고 뛰어든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이런 현상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12월4일, 인구 100만의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우리당 당원협의회 위원장 선거가 열렸다. 김호일, 고광석, 채원암 3명의 후보가 경쟁한 이 선거에서 고양시의 유력 정치인이자 ‘개혁당 그룹’의 좌장 격인 유시민 의원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의 개혁당 초기 멤버인 김 후보를 지원한다는 소문이 당 안팎에 파다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 최근 개혁당 그룹과 차별화를 선언하고 출범한 노사모·국민의 힘 중심의 ‘국민참여연대’쪽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고광석 후보가 김 후보를 219 대 215, 4표 차이로 승리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유시민 의원쪽 핵심 관계자는 “세 후보 모두 유 의원과 아주 가까운 사이고, 지구당 위원장들이 특정인을 지원하던 과거와 달리 유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엄정 중립을 지켜왔다”면서 “큰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안팎에서는 4월2일 전당대회를 겨냥한 계파간 기간당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동안 확실한 우세를 점한 것으로 평가받던 유시민·김원웅 의원 등 ‘개혁당 그룹’의 세력이 약해진 상징적 징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유시민 의원 등 개혁당 그룹이 과거 열린우리당 당원 3만명 가운데 30~40%인 1만3천명 정도를 점했다는 게 정설이었고, 누구보다 먼저 기간당원 확보 경쟁에 뛰어든 만큼 확실한 우세를 점쳤는데 자신의 텃밭에서조차 밀린 것은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기간당원 수가 과거보다 3배 이상 늘어난 10만명 수준을 넘어서면서 개혁당 세력의 비중이 전체적으로 약화된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보선 지역, 2배 이상 급증세
개혁당 그룹 안에서도 유 의원 등이 공격적인 기간당원 확보 전략을 펼치면서 ‘천신정’(천정배 원내대표·신기남 전 당 의장·정동영 통일부장관) 중심의 당권파 등 다른 계파의 반발심리를 자극하면서 확실한 우세지역에서도 역풍이 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개혁당쪽의 한 관계자는 “기존 당원 분포나 활동력으로 볼 때 경기도 지역 31개 시군구 당원협의회 가운데 최소한 절반 이상을 개혁당 그룹에서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하지만 당원협의회 준비위 구성이 거의 끝난 현재 상황에서 보면 거의 전멸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너무 빨리 당원 확대 운동에 나서면서 기존 조직만으로 승부하려던 다른 지역 현역 의원들을 자극해 오히려 역풍을 맞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유 의원 등 개혁당쪽에서 지난 9월 당헌·당규 개정 이전부터 기간당원 확대 등 세력강화 작업에 나서면서 다른 계파나 무계파 현역 의원들을 자극했고, 위기감을 느낀 이들이 막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당원 확보에 나서면서 판세가 뒤집혔다는 것이다.
실제 열린우리당 총괄조직실의 집계 결과 전국 16개 광역 시도 가운데 경기도에서 당원 확보 경쟁이 가장 치열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1만4450명의 기간당원을 확보해 1위를 차지했고, 가장 최근 집계한 12월8일부터 14일까지 엿새 동안 확보한 당원 수도 2686명으로 단연 돋보였다.
기간당원 확보가 곧 각종 선출직 출마를 좌우하는 현실에서 일부 재보선 예상 지역이 기간당원 확대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10만 기간당원 시대’를 상징하는 단면이다.
현재 여야 의원들 가운데 법원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아 내년 4월30일 재보선 예상 지역으로 꼽히는 곳은 모두 13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최근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잃은 이상락 전 의원의 지역구인 성남 중원 지역을 비롯해 충남 공주·연기(오시덕 의원), 부천 원미갑(김기석 의원), 성북을(신계륜 의원), 김해갑(김맹곤 의원) 등 10곳이 열린우리당 의원의 지역구다. 그런데 이들 지역에서 열린우리당 기간당원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왜 공주·연기는 뜨거운가
열린우리당 총괄조직실의 핵심 관계자는 “재보선 예상 지역의 경우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입후보 예정자들이 기간당원 확보 경쟁에 열을 올리면서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 2배 이상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 대부분이 300명에서 500명 안팎의 기간당원 확보 실적을 보이는 것과 달리 재보선 예상 지역에서는 평균 1천명 정도의 기간당원이 확보됐다는 것이다.
특히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뜨거운 공주·연기 지역의 경우 기간당원 수가 이미 4천명을 넘어서는 등 이상 과열 양상까지 드러나고 있다. 이 수치는 충남 지역 전체에서 확보한 기간당원 수 7702명 가운데 52%에 이르는 것으로, 충남 지역의 기간당원 확보를 이곳에서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연기·공주 지역이 다른 재보선 지역에 견줘 기간당원 이상 폭증 현상을 보이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위헌 판정의 최대 피해 지역인 이곳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만 되면 금배지는 ‘떼어놓은 당상’이라고 판단한 정치 지망생들 때문이다. 이미 이병령 전 유성구청장, 이시원 전 고려대 총학생회장(이부영 당 의장 정무특보), 골프장 사장인 김춘배씨 등 7명 정도의 예비주자가 기간당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뛰고 있다. 요즘 이곳에 재보선이 확정될 경우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 김홍신 전 의원 등 비중 있는 인사들까지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면서 예비 후보자들 사이에 기간당원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최근에는 예비 후보자들 사이에 후보자 선출을 총괄할 지역 당원협의회 위원장 선출 문제를 두고 일종의 ‘휴전협정’이 이뤄지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지난 12월19일 충청권에서는 처음으로 공주시 당원협의회가 공식 출범했다. 그런데 위원장에 이 지역 오시덕 의원의 비서관인 김성식씨가 단독 추대됐다. 김성식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일정 기간 당원협의회 위원장 출마 후보를 공모했지만 출마 신청자가 한명도 없었다”면서 “기간당원 확보전이 조기 과열되면서 파행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예비주자들 사이에 공정한 룰 관리자를 두는 게 유리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라고 말했다.
2006년 지방선거를 노리는 유력 인사들이 장기적인 포석으로 당원 가입에 도움을 주면서 기간당원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지역도 있다. 12월19일 현재 기간당원을 2천명 이상 확보한 전남 순천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에 임박한 선거는 없다. 그러나 조보훈 전 전남도 정무부지사, 조충훈 순천시장, 심택호 변호사, 개혁당 출신의 안세찬씨 등 지역의 유력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기간당원 확보에 일조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이들이 오는 2006년 순천시장 출마를 염두에 두고 움직인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영남권의 교두보를 확보하라”
한편, 열린우리당의 상대적 취약 지구인 부산·경남 등 영남권에서 최근 기간당원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12월14일 현재 16개 시도별 기간당원 확보 순위는 경기(1만4450명), 서울(1만2862명), 전남(1만2559명), 전북(8313명), 경남(7675명), 충남(7702명), 부산(6032명) 순이다. 그러나 12월 들어 부산·경남 등에서 기간당원 증가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12월8일부터 14일까지 엿새 동안 부산에서 1226명, 경남에서 1022명이 늘어났다. 이는 서울·경기에는 뒤처지는 것이지만 전남·전북·충남 지역보다는 2배 가까이 높은 증가 추세다. 이와 관련해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천신정 중심의 당권파가 상대적 취약 지구인 영남권에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전면적인 당원 확대에 나섰고 △4월 전당대회 때 당권 도전을 준비 중인 김혁규 상임중앙위원과 개혁당 그룹의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김두관 전 장관이 본격적인 경쟁에 나선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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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각 계파가 차기 당권과 각종 선거전을 겨냥한 치열한 내부 경쟁 속에서 10만 당원 고지를 넘은 가운데, 민주노동당도 10만 당원 확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당사상 처음으로 1만원 이상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 제도를 도입한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에 성공한 지난 4월 총선 기간 동안 급속한 당원 확대를 통해 현재 6만여명의 진성당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총선 이후 사실상 당원 증가가 정체 상태에 빠지면서 내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한 최고위원은 “총선 전 4만명 수준이던 당원이 총선을 거치면서 2만명 이상 늘었다”면서 “그러나 원내 진출에 따른 지원 인력 증가, 상근 당원에 대한 생계비 지급 등 경직성 경비가 증가하면서 당 재정 상태가 심한 압박을 받고 있어 당원 확대가 중대한 과제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고심하던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재정 안정화와 당세 확장을 위해 지난 9월 당대회에서 ‘내년 2월 전당대회 때까지 진성당원을 10만명까지 확대한다’고 결의하고, 최근까지 당원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 성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한 핵심 관계자는 “총선을 거치면서 진보적 지식인과 직장인 등 민주노동당에 동의하는 사람 대다수가 당에 입당했고, 민주노동당의 주력군인 민주노총도 전체 조합원 가운데 3%가 당에 가입한 이후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있다”면서 “자력으로 당원을 확대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계에 부닥친 최고위원회의는 결국 지난 12월9일 당원 확대에 △모범적인 지구당에 500만원 상당의 차량, 컴퓨터 등 사무용품을 지급 △모범 당원에 대한 별도 시상 등 ‘10만 당원 확대 인센티브제’ 도입을 결의하고, 15일 각 지구당에 이를 공지했다. 하지만 경쟁논리를 동원해 당원 확대를 강제하는 인센티브제도에 대한 당원들의 반발이 거제지자 최고위원회는 공지 하루 만인 16일 이 결의를 백지화하는 등 혼돈을 겪었다.
한 지구당 위원장은 “재정 압박에 심한 부담을 느낀 당 지도부가 주먹구구식 당원 확대에 접근했던 것 같다”면서 “한국노총 조합원의 민주노동당 가입을 통한 당원 확대, 진성당원 월 당비 확대, 각종 민생현안에 대한 적극적 해결을 통한 서민층의 당원 가입 촉진 등 좀더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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