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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날개'로 날아오르다

등록 2004-12-17 00:00 수정 2020-05-03 04:23

대통령 특사로 중국 방문하는 정동영 장관, 최근의 ‘상승 코드’는 무엇인가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12월7일치 는 “갔다 오면 순위 바뀔까”라는 제목을 붙여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최근 입지를 만평으로 다뤘다. 12월15일 개성공단 방문, 12월21~24일 대통령 특사로 중국 방문, 내년 1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 참석 등의 일정을 제시하며, 정 장관이 차기주자 여론조사의 상승을 기대하는 듯하다고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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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강금실 키운다?

정 장관이 대중적 인기 상승을 얼마나 강렬히 꿈꾸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노무현 대통령의 ‘날개 달아주기’에 힘입어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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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장관의 중국 방문을 단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이번 특사 방문은 사실 ‘특사 계급장’과 달리 특별하고 긴박한 한-중간 협의 의제가 있어서 마련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특별한 현안이 있건 없건 주요 국가를 다니면서 지도자들과 교류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자주 갖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정 장관이 ‘윗선’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도 “칠레 한-미 정상회담 결과 등을 중국 지도부에 설명하고 6자회담에 북한이 빨리 나오도록 중국이 설득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며 ‘원론적’ 방문 목적만 밝혔다.

중국 방문과 관련해선 추진 초기에 어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역대 통일부 장관들은 중국에도 통일부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가고 싶어도 불러줄 초청자가 마땅치 않았다. 과거에 일부 통일부 장관들이 베이징대학을 비롯한 민간 초청 형식으로 중국을 찾았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이번에도 한-중간 실무협의 과정에서 중국쪽은 의전상 격을 맞춰주는데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온다면 혹시 몰라도…”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통일부가 청와대와 협의하자 노 대통령이 흔쾌히 특사 자격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에 머물지 않고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위원장 문정인)에 정 장관의 방중과 관련한 ‘콘텐츠 지원’ 일체를 지시했다고 한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진작에 외국 지도자들과 교류한 경험이 적었던 점을 답답하게 느낀 것 같다”며 “정 장관에게 중국뿐 아니라 일본, 러시아까지 두루 다녀오도록 대통령이 권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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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개최 도시 이름을 붙여 보통 ‘다보스포럼’으로 부름)에 참석하는 것도 비슷하다. 이 포럼에는 세계 각국의 정상, 장관, 기업인들이 참석하며, 그 중에서도 비교적 젊은 차세대 지도자들이 얼굴을 내미는 국제 무대 성격이 일부 담겼다. 이에 정 장관은 “대통령께서 직접 참석하시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는데 노 대통령이 “올해는 외국 방문을 많이 했으니 내년에라면 몰라도 이번에는 정 장관이 가도록”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노 대통령은 강금실 전 법무장관도 함께 대표로 지명했다. 두 사람을 나란히 정치적으로 키우려 한다는 해석을 낳을 대목이었다.

노사모 등에서도 호감 표시 늘어

정 장관의 ‘화려한 행보’는 그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으로 외교·국방·통일부와 국가정보원, 청와대 NSC 사무처를 두루 관장하는 외교안보팀장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미·일·중·러·유럽연합 대사 등 주한 외교사절들과 수시로 만나고 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의 주요 고위 인사들도 정 장관을 대체로 찾는다. 본래 외교부 장관의 영역이었지만 NSC 상임위원장이라는 계급장이 톡톡히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정 장관의 참모인 김갑수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은 “노 대통령한테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류가 알음알음 전해졌기 때문인지 노 대통령의 직계 그룹에서도 정 장관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서서히 늘고 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의 한 분파로,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참여를 선언한 ‘국민참여연대’ 가운데 그런 부류가 많은 것으로 열린우리당의 한 청와대 386 출신 의원은 전했다. 이 의원은 “노사모나 국민참여연대는 여전히 노 대통령의 성공이 최우선 목표”라며 “정 장관이 대통령의 뜻을 충실하게 받드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호감을 갖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직계 인사들은 17대 총선 당시 정 장관의 노인 폄하 발언에 실망감을 강하게 표시한 바 있는데, 그 기류가 바뀐 것이다.

그가 점수를 따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는 7월1일 장관에 취임한 이래 ‘직무’와 ‘직무 관련 학습’에 전념하겠다면서 이른바 차기주자 행보 성격의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그의 정치권 참모들은 당시 “통일부 장관을 하는 데 정무보좌 기능은 필요 없다”며 장관실로 따라 들어가지 않기로 결의했다. 그 결과 장관실에는 남북 관계 전문가인 김연철 박사가 정책보좌관으로 기용됐다.

현재 정 장관과 ‘실효적으로’ 연결돼 활동 중인 정치권 참모로는 고작 김갑수씨와 전 보좌관인 정기남씨 정도가 꼽힌다. 이들은 “정세 분석과 인적 자원 관리라도 해야 한다”며 “외곽에 작은 사무실이라도 냈으면…” 하고 몇 차례 건의했다. 그러나 정 장관은 그때마다 “안 된다”며 딱 잘랐다고 정씨는 전했다.

그렇다고 정 장관이 차기주자의 꿈을 접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다. 그보다는 오히려 NSC 상임위원장과 통일부 장관으로서의 직무 성공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계산에 이르렀다고 보는 게 옳을 듯싶다. 그는 문화방송 앵커에서 국민회의 대변인을 거쳐 40대에 민주당 최고위원, 열린우리당 당의장에 오른 초고속 출세 신화의 주역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 수재’라는 평판을 얻은 그가 이 시점에서도 수재다운 나름의 셈법에 도달한 셈이다.

취임 초기 난관 적극적으로 돌파

통일부 장관으로서의 직무 수행도 뜯어볼 대목이 있다. 그의 장관 첫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취임 이틀 만에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단 방북 불허 결정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 결정은 사실 전임 정세현 장관이 내부적으로 해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경위와 관계없이 그는 북한으로부터 ‘반통일 세력’ 비슷한 존재로 지목됐다. 남북 관계 주무 장관으로선 큰 부담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트남에서 탈북자 468명을 ‘떼입국’시키는 일이 연달아 벌어졌다. 역시 북한을 강하게 자극한 일이었다. 외교부가 주도했지만 탈북자 정책의 최종 소관은 통일부였다. 정 장관은 외교안보 장관회의에서 좀더 강하게 주장해 이를 막지 못한 점을 뒷날 후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몇달 걸리더라도 몇명씩 나눠 입국시키는 방안도 있는데 취임 초기 ‘얼떨결에’ 그냥 떼밀렸다는 이야기다.

이에 북한쪽은 조선직업총동맹 관계자의 입을 통해 “정XX 장관은 임기 중 공화국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고 극언하기에 이르렀다. 통일부 장관에겐 위기였다. 가뜩이나 북한이 김대중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무현 정부에 불신을 품어온 터에, 주무 장관에 대한 기피 시그널까지 보내는 터였다.

정 장관은 그 뒤 북한쪽의 불신 해소를 으뜸 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은 것 같다. 이에 따라 그는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또 미국에서 북한 인권법이 통과된 전후에는 “나라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접근 방식을 선택해야”(8월4일)라며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동조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이어 그는 8월15일 “일부 탈북자 지원단체의 기획탈북은 남북 화해협력 정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10월2일 인터뷰에선 “내가 부임한 이후 발생한 조문단 무산 문제를 북이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했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대북 유감’을 밝혔다.

그가 또 한 가지 정력적으로 밀고 온 것은 개성공단 사업이다. 그는 장관 취임사에서 “개성공단으로 냉전을 뚫자”고 밝혔다. 남북 관계의 중요성을 긴장 완화는 물론이고 민족경제의 활로 측면에 그가 좀더 주목한 것이다. 당시 우리 정부에는 부시 미국 행정부를 의식한 탓인지 대북 경협사업의 속도를 은근히 ‘완보’로 조절하는 기류가 있었다.

취임 초기에 파악한 결과 개성공단과 관련해선 미국이 주도하는 전략물자 반출제한 협정(바세나르협정)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공작기계, 광통신 등 어떤 물자가 공단에 들어갈 수 있는지 리스트는커녕, 허용·불허 품목을 판정할 시스템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개성공단에서 12월에 시제품을 생산한다는 일정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이에 그는 통일부 교류협력국장과 주무 과장한테 아예 무역협회 등 관련 기관으로 출근하라고 지시했다. 일의 경과를 매일 아침 보고하라고 그는 닦달했다. 그 결과 2주일 만에 반출품목들을 검수·판정할 국내 시스템을 마련했다.

문제는 미국과의 협의였다. 관료들은 한-미 정상회담 수준에서 풀어야 할 문제라며 움츠렸다. 이에 정 장관은 미국으로 날아가 파월 국무, 럼즈펠드 국방장관,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을 만나 한국쪽의 준비 상황을 설명했다. 그 결과 ‘한국쪽이 결과에 책임지는 조건’으로 미국쪽의 이해를 끌어냈다.

‘콘텐츠 부족’ 이미지 바뀌나

여기에는 한국의 대중국 투자 급증 등 한-중간 접근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미국이 경계한 측면도 있다. 한국 기업이 중국으로 몰려가는 것보다는 개성공단이라는 활로를 터주는 게 낫다고 미국이 판단한 것이라고 한 외교 관계자는 밝혔다.

그러나 정 장관의 ‘판단이 서면 신속하게… 앉아서 뭉개지 말고 달려가서’ 노선도 한몫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17대 총선을 이끌며 ‘신속한 의사결정과 행동’을 모토로 ‘몽골기병론’을 부르짖은 바 있다. 이런저런 노력이 주효한 때문인지 12월15일로 잡힌 정 장관의 개성공단 시제품 생산 기념행사 참석 일정에는 북한쪽도 긍정적인 응답을 보내왔다고 통일부 고위 관계자는 밝혔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일부 보수 진영은 “정부의 통일정책이 북한의 용공통일 방안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10월4일 국정감사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며 정 장관을 공격했다. 그러나 노사모와 국민참여연대의 예처럼 열린우리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정반대의 평가가 쌓이고 있다. 그의 일부 참모들은 “정 장관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콘텐츠가 없다’와 ‘좀 보수적 아니냐’는 비판이 차츰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책) 콘텐츠 부족’은 그가 국회의원 시절에 의정활동을 제쳐놓고 대변인으로서 여야 정쟁, 정풍운동을 비롯한 당내 활동에 주력하는 과정에서 쌓인 평판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정책 전문성과 정보력에서 앞설 수밖에 없는 장관직을 수행하고, 그것도 지금처럼 남북 관계를 전향적으로 다뤄나간다면 기존의 이미지가 실제 바뀔 가능성도 있다.

그는 나란히 차기주자로 꼽히는 이해찬 총리나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마찬가지로 “직무에 전념”을 외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직무 전념’에 따르는 정치적 효과를 정교하게 계산하는 것 같다. 의원 시절에 과시한 ‘정치 수재’의 재능은 여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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