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최고위원 당선된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 2007년 대선 때 개혁그룹의 ‘상품’ 만들겠다 </font>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7월19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의 주인공은 다시 대표로 선출된 박근혜 대표였다. 하지만 대표최고위원 외에 4명의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이는 원희룡 의원이었다. 40살인 원 의원이 낡고 노쇠한 이미지로 애를 먹고 있는 한나라당의 지도부로 선출됐다는 것 자체가 한나라당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중적 인지도가 큰 자산
원 의원의 당초 목표는 2등이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것은 한나라당 내 개혁그룹을 자처하는 ‘새정치 수요모임’의 목표였다. 원 의원은 7월10일 불출마 방침을 뒤집고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원희룡 개인은 없다”고 선언했다. 개혁그룹의 대표주자로 나섰을 뿐이며, 당선된 이후에도 그 ‘도구’로써 기능하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의 출마를 강권했던 남경필 원내 수석부대표는 “지금까지 우리는 밖에서 ‘호랑이를 잡아라’ 하고 소리만 질렀다. 언제까지 소리만 칠건가, 호랑이를 잡으러 들어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수요모임 소속 의원들이 모였을 때 이 모임을 친목단체로 할 건지 아니면 정치결사체 성격으로 할 것인지 물었다. 후보 가운데 개혁그룹의 대표 선수가 없다는 데 모두 위기감을 느꼈다. 결국 1명을 출마시키기로 했고 자연스럽게 원 의원으로 뜻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원 의원의 선전을 수요모임의 조직력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수요모임 소속 의원은 20명이고, 모임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원 의원을 포함한 수요모임 색채가 가까운 의원은 40여명 수준이다. 게다가 상당수가 초선이어서 고참 당원들로 구성된 대의원에 대한 영향력도 떨어진다. 실제 원 의원은 선거인단이 8천여명인 대의원 투표(50%)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한 반면, 일반인들이 참가한 여론조사(30%)와 인터넷 투표(20%)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대의원 투표에서의 감점을 여론조사와 인터넷 투표 반영분에서 만회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 의원의 선전은 상당 부분 그의 개인적인 정치적 자산에 기인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무엇이 정치인 원희룡에게 기대를 걸게 만드는 것일까.
일단 그의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꼽을 수 있다. 16대에 이어 이제 재선에 불과하지만 그는 정치입문과 지난 4년 동안 줄곧 여론의 조명을 받았다. 한나라당에서 그 정치인의 언행에 대중들이 호응을 보이는 몇 안 되는 ‘대중 정치인’이다. 지난 총선 때 지역구도가 많이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더라도 중앙정치권에서는 “그런 정치인도 있었냐”는 반응이 나오는 의원들이 상당수다. 이에 비해 원 의원은 정치권 입문 당시부터 여론의 주목을 끌었다. 학력고사 전국 1등과 서울대 법대 입학, 이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사법고시 합격과 검사 등의 이력이 특이했고,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젊은 피’ 수혈 경쟁을 벌일 때 양쪽으로부터 ‘콜’을 받아 그의 선택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박 대표 올바른 방향일 때만 지지”
원 의원 성장 배경의 또 다른 한 축은 끊임없는 ‘개김’이었다. 그는 16대 의원 시절엔 소장파 의원과 지구당위원장의 모임인 ‘미래연대’에서 정당 개혁과 정치 개혁을 주장해 주목을 끌었다. 물론 이에 관해서는 정치적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꼬리를 내려 결국 이회창 전 총재의 친위부대 이상이 아니었다”부터 “‘탈당 명분을 쌓기 위해 저런다’는 욕을 먹어가면서도 끊임없이 개혁을 주장해왔고 4·15 총선을 전후로 일정한 성과를 끌어냈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원 의원은 이런 양쪽의 평가를 모두 수용하는 듯했다.
“사실 얼굴을 들기 부끄러운 적도 있었다. 이회창 대세론에 안주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가 아닌 당에 제출한 것이라든지, 특히 지난 3월 탄핵 국면에서 끝까지 원칙을 지키지 못했던 부분은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정치관계법 개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현재 모습으로 한나라당이 바뀌어오는 데도 내 발자국이 많이 찍혀 있다. 초선 때는 긴가민가했고 독자적으로 (당과) ‘인격 분리’가 되지 않아 타협하고 의존했지만 이제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버티고 싸울 것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와 싸운다는 것일까. 과거에는 당 지도부에 항거하고 수구냉전적인 인사들과 사상전을 벌였다고 하지만, 이제 원 의원이 속한 수요모임이 박근혜 대표 체제의 한 보조축을 형성하고 있다.
원 의원은 이에 “최병렬 전 대표를 지지했다가 그가 당초 약속한 방향과 거꾸로 가자 6개월 만에 반기를 들었던 때를 생각해보라”며 “박 대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범위 내에서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이나 의문사위 등 민감한 현안에 원 의원은 박 대표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박 의원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떠받들어지는 상태에서 관리형 리더십이지 새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정치 투쟁을 만들어가는 데는 익숙지 않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이런 박 대표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이해관계를 달리할 수 있는 것이 그의 복안이다.
각론과 대안 마련이 숙제
원희룡 의원은 “한나라당 개혁 블록이 콘텐츠를 가진 하나의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2년 동안 집중할 생각”이라며 “한나라당의 변화를 이끌어 2007년 대선 때 당내 경선에서 정책과 인물 면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LG와 삼성이 국내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상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당 내에서 피터지게 경쟁해야 본선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 개혁그룹의 대표 선수를 내보낸다면, 이에 최고위원 당선으로 원 의원 자신이 출발선에 가까워졌음에도 그는 “일단 개혁그룹의 파이를 키우면 그때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경쟁이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정치인 원희룡은 어떤 정치를 그리고 있을까. 그는 평소 “보수가 터전이 좋다”고 강조해왔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과 열린우리당 과반 의석 확보의 동력이 됐던 30·40대가 “이념과 정치 과잉”인 반면, 성장하는 20대는 “개인적이며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우파의 가치는 뚜렷하지만, 자유시장 경제만으로 현대사회가 운영되지 않는 만큼 시장의 실패와 민주의 과잉을 보완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원 의원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델인지에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연구과제라는 것이다. 원 의원의 성공이 “보수는 보수돼야 한다” “신보수” “개혁적 보수” 등 과거 한나라당과는 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시대적 흐름과 맞닿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아직 찾고 있지 못한 답과 각론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그도 낡은 보수로 평가받는 날이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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