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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단’같은 리더가 되련다

등록 2004-07-23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진단한 위기 원인은 ‘자만’… “복종 강요가 아니라 설득하는 리더십을” </font>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열린우리당이 원내 과반수 여당다운 힘과 설득력을 갖추고 정국을 이끈다고 보는 사람은 적다. 7월17일 신기남 의장과의 인터뷰에서도 열린우리당의 과도기적 진통에 따른 고민들이 읽혔다.

그는 우선 “국민들의 아량과 기대, 천우신조가 겹쳐 총선에서 가까스로 이겼음에도 대단한 지지를 받거나 강력해진 것처럼 착각해온 경향이 있었다”며 구성원들의 ‘자만’에서 위기의 원인을 찾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창당했지만 창당 작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며 “총선 이전의 위기의식을 잃지 않고 발벗고 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도개혁은 좋은 정체성”

구체적으로 그는 당의 지지율 하락 원인을 “우리가 아직 손발을 맞출 시간을 갖지 못한 가운데 김선일씨 피랍을 비롯한 여러 사건들이 터졌다”며 당정 협의, 당론 조정 시스템 구축이 늦어진 데서 찾았다. 그는 “최근 당·정·청 3각 협의 시스템을 마련한 만큼 앞으로 하나씩 현안들을 풀어나가면 지지율도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말들은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최근의 문제들을 비교적 실무 차원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신 의장은 “열린우리당에서 이탈한 지지층이 한나라당으로 옮겨간 것은 아니다”며 “대부분 무응답·부동층이 되었으며 그 중 몇%만이 민주노동당으로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은 517호 표지이야기인 ‘위기의 공룡 닫힌우리당’에서 열린우리당의 가장 큰 문제점을 정체성 또는 비전의 모호성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이를테면 한나라당이 수구적 행태를 벗으려 하고, 민주노동당 때문에 진보 성향 지지층을 잠식당할 구조적 상황임에도 열린우리당에서 체계적인 정체성 또는 이념 정립이 엿보이지 않음에 은 주목했다.

반면에 신 의장은 “중도개혁주의라는 이념을 추구하는 점에서 열린우리당은 새천년민주당과 상당히 유사하다”며 “민주당과의 차이점은 개혁을 훨씬 강하게 추구하는 등의 방법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민주당에서 나온 것도 민주당의 정체성을 부인한 게 아니라 그 정당의 폐쇄성이 옳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도개혁 정당은 아주 좋은 정체성으로 민주당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며 “방향이 옳다면 유지해야 하며 그 방향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시스템을 수정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8월 중 당 부설기관으로 설립할 정책연구재단의 최우선 연구과제로도 “개혁 과제의 우선순위와 추진 절차, 방법 등을 세팅해주기 바란다”고 실용적 접근을 주문했다.

중도개혁주의는 정당사적으로 볼 때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가 내건 ‘중산층과 서민의 당’ 개념을, 2000년 새천년민주당으로 변신할 때 수정·채택한 이념이다. 17대 총선 때까지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장으로 활동한 황태연 동국대 교수가 이념 정립을 주도했다.

그러나 분당 뒤 민주당이 노무현 정부를 “포퓰리즘 정권” “급진 정권”이라고 맹공격하면서 현 집권세력과 민주당은 정체성이 다른 것 아닌가라는 대중적 인식이 확산됐다. “우리는 이념적으로 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열린우리당의 입장에서 이미지 혼선이 생기는 것은 이런 배경 탓이다.

어쨌든 신 의장은 “중도개혁주의라는 용어 하나만을 붙들고 갈 수 없는 일”이라며 “그 이념을 시대에 맞게 발전시키되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중·장기 정책 개발을 맡을 정책연구재단(준비위원장 박명광 의원)은 석·박사급 연구인력만 30~40명을 갖추게 된다. 국고보조금 가운데 30%를 정책개발비로 쓰도록 한 정당법 규정에 따라 매달 3억원을 배정받는다. 신 의장은 “연간 1500억원을 쓰는 독일 에버트 재단(사민당 계열)에 비해 작은 규모이지만 앞으로 국고 지원을 늘리는 등 보완 입법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를 둘러싸고는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라크 추가 파병 등 몇 가지 이슈들에 효과적으로 당론이 모아지지 않은 탓이었다.

이에 그는 “당원과 의원들을 일사불란하게 복종시킨다는 과거의 패러다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정당은 당론에 따르지 않으면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겠다는 등의 경고를 했지만, 열린우리당은 그런 구조를 깨자고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새 모델 정착 안 된 과도기적 고민

그는 대신에 “리더십은 대의명분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당원과 의원들한테서 존경받고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새로운 리더십”이라며 “이를 위해 나는 벤치에 앉아 지시하고 감독하는 ‘히딩크형’이 아니라 팀의 선수 겸 주장으로서 함께 그라운드에서 뛰는 ‘지단(프랑스 축구선수)형’ 리더가 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단형 리더십을 “솔선수범해서 뛰고 설득하는” 것으로 요약했다.

이에 따라 그는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를 놓고도 의원총회 그리고 의원들과의 식사 모임 등에 부지런히 좇아다녔다고 한다. 그 결과 대다수 의원들의 찬성 의견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는 “그럼에도 독자적으로 파병 재검토 서명운동을 하는 의원들이 나왔지만, 나는 이들에게 소신 철회를 강요하지 않았다”며 “그런 정도의 한계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스타일의 리더십을 발휘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상황에는 과거로 돌아갈 순 없지만, 그렇다고 아직 새로운 모델이 정착됐다고 보기도 어려운 과도기적 고민이 담긴 것 같다. 그가 말한 ‘지단형 리더십’에 나름의 명분은 있지만 ‘발품’이 많이 들고 ‘와글와글’ 상황도 잦기 때문이다.

그는 ‘의장이 쓸 수 있는 당 재정의 범위’를 묻자 “판공비는 한푼도 없으며, 공식 행사의 밥값을 당이 내준 신용카드로 처리할 정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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