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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멘트, 접대용이냐 소신이냐

등록 2004-07-16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신기남 의장이 미국 방문 중 쏟아낸 ‘친미’ 발언… “외교 · 안보에 대한 보수적 소신 표출” </font>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미국을 향한 접대용 멘트인가, 체화된 보수적 미국관을 표출한 것인가.

지난 7월5∼10일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의 ‘친미성’ 발언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면서 열린우리당 안팎에서 이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신 의장이 주한미군 재배치와 이라크 추가 파병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거센 민감한 시기에 미국을 방문해 친미 논란을 불러올 발언들을 쏟아냈다는 점이 여간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추가 파병 동의안 연장까지 내비쳐

첫 분란은 6일 워싱턴 동포들과의 만찬 장소 앞에서 돌출됐다. 재미 재향군인회 소속 동포 10여명이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전향 공작에 굴복하지 않은 남파 간첩 등을 민주화운동 기여자로 인정한 데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자 신 의장은 자신의 성장 내력과 열린우리당 정체성을 연결해 규정했다. “내 부친은 지리산 공비토벌사령관으로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나는 해군장교로 자원 근무했다. 우리들의 사상은 확고하고, 내가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있는 한 한-미 동맹을 굳건히 뒷받침할 테니, 믿어달라.” 그는 이어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외교정책 1조는 한-미 동맹 강화”라며 “반미 데모 참가자와 얘기해보면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면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열린우리당 의원 일각에서는 “신 의장이 자신의 출신 내력까지 들먹이며,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친미 반공처럼 몰아가는 것은 당당하지 못한 모습”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협력적 자주외교를 기본 노선으로 설정한 노무현 정권의 핵심축인 집권 여당의 의장이 부친의 개인적 이력을 근거로 당의 외교 노선을 규정하는 오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개혁 성향의 한 중진 의원은 “우리당 외교 노선의 기본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며 “그에 따라 한-미 동맹은 물론 주변 열강들과 외교적 친밀도를 높여가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한-미 동맹 강화를 외치는 게 아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신 의장의 발언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7일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에게 “추가 파병 반대 움직임도 많지만 국민 다수의 진심은 한-미 동맹 차원에서 추가 파병을 하라는 것이라고 파악한다”며 “앞으로 4개월 뒤를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해 친미 논란에 불을 댕겼다. 그는 “진정 국면으로 갈 수도 있고, 상황을 지켜보며 민심에 따라 할 것이다”며 올 연말까지 유효한 추가 파병 동의안을 연장하겠다는 의중도 내비쳤다.

신 의장의 이런 발언은 이라크 추가 파병 철회 결의안을 제출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반발을 촉발했다. 한 재선 의원은 “여당 의원들 내부에서도 파병 반대 여론이 거세고, 이번에는 16대 국회에서 약속한 것이니 이행하지만 연장은 안 된다는 기본 정서를 왜곡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미 관계 악화를 개선하려는 접대성 발언으로 이해하려 했지만, 국민의 정서를 왜곡하는 언행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 의장은 이 밖에도 “일본과 중국을 견제하는 현실적 수단은 한-미 동맹”이라거나 “우리에게 유일한 동맹은 미국뿐”이라는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뉴욕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는 “김선일씨 피살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또 발생한다 해도 추가 파병 방침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했다.

“이런 지도부가 임기 채울까?”

김씨 납치·살해범들이 한국 정부의 파병 결정을 살해의 직접적 이유로 내세웠고, 정부와 여당 안에서도 성급한 파병 발표가 김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 아니냐는 반성의 움직임이 있는 상황과는 너무 동떨어진 그의 인식에 대해서는 일부 당직자들까지 고개를 흔들고 있다.

추가 파병 철회안 서명에 참여하지 않은 한 의원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데, 혼자서 삽질하는 격”이라며 “이런 지도부가 올 여름을 넘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일갈했다.

신 의장은 자신의 방미 활동에 대해 “기간은 짧았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여정이었고, 한-미 동맹에 대한 명확하고 단호한 메시지로 미국의 오해를 불식했다”며 “국내용이 아니라, 미국 현지용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 의장을 잘 아는 열린우리당의 핵심 인사는 “신 의장은 외교·안보 문제에 관한 한 ‘합리적 국가주의’라고 규정할 정도의 보수적 소신을 갖고 있다”며 “그는 국가보다 더 큰 외교·안보적 가치는 없고, 국익을 지키려면 미국과 동맹을 확고히 하는 게 기본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을 의식한 단순 접대용 멘트가 아닌 소신 발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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