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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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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올리비아 럼] 물, 물, 물을 꿰뚫어보라

등록 2004-02-12 00:00 수정 2020-05-03 04:23

물 재생기술 개발한 ‘하이프럭스’로 거부가 된 여성, 정치권에도 나섰으나…

싱가포르= 유니스 라오(Eunice Lao)/ 전 기자

“다가올 세상에 가장 중대한 현안은 물 부족일 거야. 특히 급격한 개발 열풍에 휩쓸린 중국이나 원천적으로 물이 없는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은 더욱 심각한 사태를 맞을 거고.”

오늘날 사업가로 또 정치가로 이름 난 올리비아 럼(Olivia Lum)은 수중에 미화 1만달러가 있던 15년 전, ‘물’을 생각하며 ‘하이프럭스’(Hyflux)라는 회사를 차렸다. 수자원재생, 정화, 탈염 기술을 개발한 하이프럭스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아든 중국 개발 붐을 타고 자치단체와 공단지역들의 수요가 폭발했다. 그리고 15년 만에 2억5천만달러의 회사로 성장했다. 올리비아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돈이 많은 여성사업가 가운데 한명이 되었다.

올리비아의 성공신화는 실화라는 점에서, 한국판 텔레비전 드라마보다 더 눈물나고 감동적인 요소를 안고 있다. 1961년 말레이시아의 페락에서 태어난 올리비아는 고아로 자라다가 예순 먹은 한 중국 여성에게 입양되었다. 그리고 아홉살이 되는 해부터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녀가장이 되었다. 어린 올리비아는 등나무 가방을 짜고 장례식장을 돌며 피리를 불어 가족을 먹여살렸다. “그래도 난 행운이었어. 온 동네가 아침부터 싸우기만 하는 그런 작은 마을이었는데, 다행히 난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

그런 성장 배경 속에서도 맑은 미소를 짓는 올리비아에게는 확실히 ‘행운’이 찾아왔다. “어느 날, 페이 유안중학교 교장선생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어. ‘올리비아 넌 이 마을 떠나. 여긴 너에게 너무 작은 곳이야’.”

그날로 올리비아는 10달러짜리 지폐 한장을 들고 싱가포르로 무작정 떠났다. 지독하게 일하고 공부한 끝에 싱가포르국립대학 화학과를 마쳤다. 그리고 스물여덟 되던 해 하이프럭스를 세우기 전까지 다국적기업 ‘그락소’(Glaxo Pharmateutical)에서 일했다.

올리비아의 신화가 알려지자, 경제계에서는 2001년 그녀를 임명직 국회의원으로 추천했다. 그녀는 2003년 올해의 여성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이 남아 있다. “정치적 역할을 못할 바에야 차라리 돌아가서 자기 사업에나 치중하시지.” “여성문제와 여성권리에 침묵하는 ‘올해의 여성’은 대체 어떤 여성인가?”

올리비아의 이야기가 ‘신화’가 될지 아니면 눈물 짜는 ‘드라마’로 끝날지는, 이 두 가지 사회적 비난을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달렸다. 올 2004년은 그녀에게 도전의 해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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