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의 평화가 위협받는다. 50년 동안 미군 폭격장으로 고통받았던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의 평화가 흔들린다.
2005년까지 미군 폭격장으로 사용된 매향리.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가 매일 마을 위를 지나다녔다. 미군은 매향리 앞바다 농섬 사격장 표적지에 밤낮없이 폭탄과 실탄을 퍼부었다. 폭격 훈련을 일주일에 사흘 이상 했다. 폭음에 노출된 주민들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1999년 <한겨레> 보도를 시작으로 매향리 미군 폭격장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2000년 5월 미군 A10 전투기가 폭격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폭탄이 민가로 떨어졌다. 미군은 실수라 변명했지만 주민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이후 국민적 공감이 확산됐다. 5년 동안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연대투쟁이 이어졌다. 그 결과 2005년 미군 폭격장이 철수했다. 이후 미군 폭격 훈련으로 나온 폭탄과 불발탄의 정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방부는 2009년까지 매향리 앞바다 폭격장에 처박힌 미군 폭탄과 불발탄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5년간 900억원의 예산으로 정화' 또는 ‘4년간 700억원의 수거비용 소요' 등의 이야기만 무성했다. 국방부는 불발탄과 폭탄을 제거하는 듯 ‘간보기’만 하다가 실질적인 행동은 회피했다. 지금도 농섬을 중심으로 반경 1.5㎞ 갯벌에 수많은 폭탄이 있다. 깊이 20㎝부터 5m까지 박혀 있다. 농섬 주변을 둘러보면 방치된 폭탄도 상당하다.
그리고 2020년 수원전투비행장을 매향리 우정읍으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국방부는 우정읍 화옹지구로 수원전투비행장 이전 계획을 추진 중이었다. 2014년 수원전투비행장 이전 예비후보지로 우정읍 일대를 일방적으로 지정했다. 이후 이전 계획이 교착상태에 빠졌는데, 2020년 8월 대구 군공항이 경북 의성과 군위로 이전이 결정되면서 이를 계기로 국방부가 수원전투비행장 이전을 서두르고 있다.
매향리는 우정읍의 한 마을이다. 화웅지구는 매향리 바로 옆이다. 전투기가 뜨고 내린다면 화옹지구나 매향리나 같은 영향권이 된다. 그래서 매향리는 다시 전투기 굉음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방부가 주도하는 수원전투비행장이 미군 폭격장으로 50여 년간 고통받았던 매향리 바로 옆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은 2020년부터 조금씩 주민들에게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화성시와 화성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 남병호 화성시 군공항이전대응담당관은 이렇게 말했다. “국방부는 전투비행장 이전을 추진하면서 화성시와 제대로 협의하지 않았다. 2014년 당시 화성시는 이전 예비후보지에서 제외해줄 것을 분명히 전달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이를 무시하고 이전 후보지로 화성시 우정읍 일대를 발표했다.”
국방부의 일방주의는 역사가 깊다. 앞서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국방부는 군사시설을 조성할 때 지역과 협의하지 않고 부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해 밀어붙였다. 1982년 태백산 한가운데에 세운 공군폭격훈련장도 그렇게 결정됐다. 당시 한 공군 소령이 1800만 평의 산림과 산촌마을을 공군폭격훈련장으로 편입시키려고 계획 도면을 긋고 마을과 농경지까지 징발해 주민들을 몰아냈다. 이런 일방주의적 결정 방식이 지금도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수원전투비행장 이전 예비후보지를 선정한 과정을 뜯어보면 ‘국방부는 결정하고 대상 지역은 결정에 따르라’라는 식이다. 여기에 더해 수원전투비행장 이전 계획의 이면에 부동산개발과 토건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수원시는 기존 수원전투비행장 부지를 개발하면 20조원가량 확보된다고 한다. 더불어 우정읍으로 이전되는 전투비행장 예정지에 통합국제공항을 추진하자고 한다. 하지만 그곳은 인천국제공항에서 50㎞도 떨어져 있지 않다.
평화마을 만들어온 주민들 “죽기 살기로 저지”미군 폭격장이 나가고 매향리는 평화마을로 자리매김했다. 화성시와 정부의 지원으로 미군 폭격장 부지에 평화생태공원과 평화기념관을 조성 중이었다. 평화생태공원은 거의 완성됐고, 평화기념관은 2021년 안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2005년까지 매향리 미군 폭격장 폐쇄 운동을 주도한 전만규 매향리 평화마을 건립추진위원장이 매향리 상황을 전했다. “미군 폭격장이 있던 시절 매향리는 전쟁터 한가운데 있었다. 2006년 미군 폭격장이 폐쇄되고 평화가 왔다. 주민들은 전투기가 사라진 뒤 비로소 평화로움을 몸으로 느꼈다. 매향리 사람들은 평화생태공원이 열리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전 위원장은 수원전투비행장의 매향리 인근 이전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다시 매향리 하늘에 전투기 굉음이 울린다면 주민들은 죽을힘을 다해 싸울 것이다. 매향리 주민들은 평화로운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느끼면서 살고 있다. 우리에게 평화는 이념이나 가치관이 아니라 생존이다. 국방부가 다시 매향리 하늘에 전투기를 띄운다면 갯벌에 박힌 폭탄과 불발탄을 우리 손으로 수거해서 국방부 청사로 쳐들어갈 것이다.” 전 위원장은 매향리 미군 폭격장 폐쇄 투쟁으로 네 번이나 구속됐다.
매향리 주민들의 다수가 노인이다. 매향리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전투기로 인한 고통이 너무 끔찍했다. 우리는 죽기 살기로 저지할 것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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