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아 커튼을 젖히면 아파트 창밖에는 어김없이 말똥가리가 날아와 앉아 있다. 경기도 파주시 한 아파트 창과 마주한 야산에서 가장 키 큰 나무는 겨우내 맹금류(육식성 조류) 말똥가리 차지다. 올해로 2년째다. 사방이 트인 목 좋은 자리여서 쉬거나 사냥감을 물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원래 멧비둘기와 까치가 모여 잠을 자던 곳이었다. 겨울이면 물까치와 어치, 콩새, 밀화부리가 보이고 고라니도 어슬렁댄다. 하지만 멀리 말똥가리가 모습을 드러내기만 해도 새들은 놀라 달아난다. 눈에 잘 띄는 곳에 포식자가 내려앉기만 해도 창밖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를 정도다. 더구나 말똥가리는 여러 마리가 함께 눈에 잘 띄지 않게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서 사냥감을 노리기도 한다. 물론 이 지역 터줏대감 까치나 까마귀는 말똥가리를 반기지 않는다. 어떻게든 귀찮게 해서 쫓아내고야 만다. 3월 들어 봄기운이 느껴지면서 겨울철새인 말똥가리가 귀향길에 올랐는지 더는 보이지 않는다. 말똥가리가 앉았던 나무는 이제 까치와 까마귀 차지다. 도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말똥가리가 다시 창밖에서 비상할 겨울이 벌써 기다려진다.
파주=사진·글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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