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눈이 내리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 지난 2월11일, 강원도 강릉 시내는 요즘 흥행하는 만화영화 제목처럼 ‘겨울왕국’이었다. 원래 4차선인 도로는 2차선으로 축소됐다. 갓길에 방치된 차들은 눈을 이불 삼아 덮고 있다. 골목길은 제대로 제설이 되지 않아 사람들이 토끼굴로 이동했다. 지난 2월6일부터 강원도 영동지방에 1m 넘게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강릉 시내를 벗어나 산간마을이 많은 왕산면으로 향했다. 제설차와 트랙터들이 쉴 새 없이 다니면서 도로 위의 눈을 치우고 있다. 큰 도로를 벗어나 도마2리 탑동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자 1m 넘게 쌓인 눈이 앞을 가로막는다. 마을 주민들이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토끼굴을 만들고 있다. 삽으로 연신 눈을 퍼올리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이 노인인지라 제설 작업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 눈 속으로 들어가자 허리까지 눈이 덮는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다리가 천근같이 느껴지고 10여 분만 걸어도 가쁜 숨이 올라온다.
토끼굴을 따라 300m를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최제열(81)·엄순년(80) 부부가 사는 집이 나온다. 처마까지 눈이 차올라 원래 집의 형태가 어떤지 알아볼 수 없다. 화장실, 개집, 창고, 안방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곳으로 토끼굴이 만들어져 있다. 생활에 필요한 집 주변만 눈이 치워져 있다. 담벼락에는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이 쌓여 있고 아궁이 위 솥에서는 물이 끓고 있다. 할아버지는 아궁이에 땔감을 넣으면서 “내가 팔십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았는데 올해같이 눈이 많이 내린 것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겨울나기를 위해 땔감과 음식을 미리 준비해서 당장 생활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지만 힘이 달리는 노부부에게 눈 치우기는 고역이다. 아무리 눈을 치워도 기껏해야 마을 도로와 연결되는 토끼굴 정도만 만들 수 있다. 할머니는 천식이 심해서 산소발생기를 달고 산다. 잠깐만 밖에 나와서 눈을 치워도 숨이 찬다. 눈이 많이 와서 병원에 못 가는 상황을 대비해 두 달치 약을 준비했다. “앞으로도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하는데 걱정이야.” 할머니의 시선이 간간이 눈을 뿌리고 있는 하늘로 향했다.
강릉=사진·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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