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문래동6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낡은 이발소가 나온다. 상호도 없이 그냥 ‘이발’이라고 간판을 달고 있다.
초여름인데 연탄난로가 물을 데우고 있다. 구식 카세트 라디오가 쟁쟁거리는 속에 가위질 소리가 잔잔하다. 손님이 왔다. “어서 오세요.” “한 달 넘었지.” “아드님은 어쩌고….” “호주 갔어.” “유학 갔구나.” “유학은…, 어학연수지.”
손님은 셔츠를 벗고 내의 차림으로 의자에 앉는다. 가위질이 시작되고 손님은 눈을 감고 선잠에 빠져든다. 정작 머리를 어떻게 깎을지는 말이 없다. 물어보지도 않는다. “물어서 뭐해? 20년 넘게 여기 다니는 분인데.”
일흔이 넘은 이장도 사장이 졸고 있는 손님의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이발을 한다. 이 사장은 이 자리에서 30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 “시작할 땐 한 10년 하고 그만둬야지 했는데 벌써 30년이야. 앞으로 10년은 더 할 수 있겠어.” 재개발 전에는 주변 공장 노동자들이 이발을 하려고 줄을 섰다. 지금도 하루에 20여 명의 손님이 온다. 대부분 10년 넘은 단골이다. 인근 주민도 있지만 서울 불광동, 인천 송도, 경기도 분당 등에서 산 넘고 물 건너오는 이도 꽤 된다. “편하잖아. 여기 살다가 이사 갔는데 마땅히 다닐 이발소도 없고. 요즘은 다 미용실이고, 이상한 이발소만 있잖아. 그러니까 그냥 오는 거지.”
거울 위 선반에는 쓰다 남은 염색약들이 빼곡히 놓여 있다. 염색약 겉에는 주인 이름이 적혀 있다. 물뿌리개로 머리를 감기고, 잘라낸 신문지로 면도 뒤 남는 찌꺼기를 닦아낸다. 문래동 ‘이발’소에 가면 30년 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글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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