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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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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장벽이 길을 막는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한다며 구럼비 바위 가로막은 벽으로 풍광은 갇히고 마을의 공동체는 둘로 나뉜 기괴한 슬픔
등록 2012-02-22 16:10 수정 2020-05-03 04:26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현장을 둘러싼 벽./2012.2.14/한겨레21박승화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현장을 둘러싼 벽./2012.2.14/한겨레21박승화

이상한 벽이 길을 막는다. 높고 길다. 돌아갈 길도 없어 보인다. 들판을 가로지르던 바람도 넘지 못하고 벽에 부딪쳐 울음소리를 낸다. 공상의 세계에나 존재할 것 같은 하얀 벽. 무엇을 지키려고, 무엇을 막으려고 있는 벽일까?

여기에는 본디 바닷가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분명히 이쯤에서는 바다가 보여야 한다. 보았었다. 검은 구럼비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와 파란 바다 위 범섬의 풍경에 찬사를 올렸었다. 시선은 갇히고 말문은 막혔다.

제주 강정마을은 주로 귤 농사와 해산물 채취를 주업으로 한 가족 같은 공동체였다.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건설해 주민들의 소득을 증대해줄 것이라는 정부의 말에 주민들은 둘로 갈라졌다. 지금은 한 가족 같던 주민 사이에도 벽이 놓여 있다. 강정에서 태어나 한 번도 마을을 떠난 적이 없는 할망도 이 벽 앞에서는 외부 불순세력이다.

이 기괴한 흰 장벽은 모든 것을 가로막고 있다.

제주=사진·글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벽은 마을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바짝 붙어서 이어져 있다.

벽은 마을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바짝 붙어서 이어져 있다.

벽을 따라가다 보면 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유일한 출입문이 있다.

벽을 따라가다 보면 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유일한 출입문이 있다.

강정포구 방파제에서는 공사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열이면 아홉은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강정포구 방파제에서는 공사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열이면 아홉은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강정천 하류 지역에는 아직 벽이 서 있지 않다. 대신에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려고 날카로운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강정천 하류 지역에는 아직 벽이 서 있지 않다. 대신에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려고 날카로운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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