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원자력’의 참혹한 오늘
프리퍄티 도심 건물에 그려진 벽화(그라피티) 뒤로 사고가 난 제4호 원자로가 보인다. 4월 원자로는 납과 시멘트 등으로 봉해져 있다.
한 유치원 창가에 버려진 어린이용 방독면과 신발
프리퍄티.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도시.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옛 소련의 잘 만들어진 계획도시였다. 주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종사자들이 살았던 이 도시는 160개 아파트 블록에 약 1만4천 가구 5만여 명이 거주했으며, 옛 소련 정부의 전폭적 지원으로 각종 교육·의료·보건·문화 시설 등을 갖춘, 가장 성공적인 계획도시로 성장해갔다.
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그 뒤로 36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4만5천 명의 시민이 대피했고, 프리퍄티는 유령도시가 됐다.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세워진 건축물과 도로 등은 세월의 흔적을 안은 채 그대로 남아 있지만, 여전히 이곳은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된 유령의 도시다. 과학자들은 900년이나 지나야 안전해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죽음의 도시가 돼버린 프리퍄티. 체르노빌 발전소와 이 도시가 건설될 당시 소련 정부가 내세운 슬로건은 “안전한 원자력”이었다.
25년이 지난 유령의 도시와 대재앙이 발생하기 전 잘 꾸며진 도시의 모습을 비교해 보며 좁은 국토에서 원자력 신화에 매몰된 우리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본다.
사진 로이터·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녹슨 채 방치된 놀이기구
사고가 일어나기 전인 1982년 잘 정돈된 도시 모습(위)과 죽음의 도시로 변한 2011년 현재의 스산한 모습(아래)
사고가 일어나기 전인 1982년 잘 정돈된 도시 모습(위)과 죽음의 도시로 변한 2011년 현재의 스산한 모습(아래)
사고가 일어나기 전인 1982년 잘 정돈된 도시 모습(위)과 죽음의 도시로 변한 2011년 현재의 스산한 모습(아래)
사고가 일어나기 전인 1982년 잘 정돈된 도시 모습(위)과 죽음의 도시로 변한 2011년 현재의 스산한 모습(아래)
사고가 일어나기 전인 1982년 잘 정돈된 도시 모습(위)과 죽음의 도시로 변한 2011년 현재의 스산한 모습(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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