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성시훈씨가 지키는 음악다방 ‘세월이 가면’의 뮤직박스에는 2만여 장의 음반이 가득하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경기 안양시 석수동의 음악다방 ‘세월이 가면’. 문을 열자 이문세의 노래 이 얼었던 얼굴을 감싸며 흐른다. 이어지는 DJ 성시훈(50)씨의 부드러운 중저음 목소리가 가게 바닥에 내려앉는다.
“오늘은 날씨가 많이 풀렸네요. 춥고 긴 겨울도 이젠 서서히 자리를 내주려나 봅니다. 5번 테이블에서 신청곡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우정도 변치 말자는 사연과 함께 어릴 때 같이 듣던 노래라고 하네요. 조덕배의 띄워드립니다.”
DJ의 멘트가 끝나자 요즘은 보기 드문 LP판이 턴테이블 위에서 돌아간다. 약간의 지직거림과 함께 묵직한 레코드판의 음악이 따스한 공기에 녹아 들어간다.
1970∼80년대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다고 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음악다방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쇠퇴해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모두가 음악다방을 외면하던 2006년, 평소 음악을 좋아하던 한영걸(56)씨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레코드판 2만여 장으로 이곳에 음악다방을 차렸다.
“돈 안 된다고 주변에서 말렸어요. 하지만 평생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음악을 좋아하던 그 시절의 사람들이 찾아와 추억을 떠올리는 공간 하나는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차렸는데, 소문을 듣고 제법 단골이 많이 생겼어요. 손님들이 음악을 듣고 추억에 빠질 땐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1980년부터 안양에서 DJ를 했던 성시훈씨가 이곳의 붙박이 DJ다. 조그만 뮤직박스에 앉아 손님들의 사연과 신청곡을 들려준다.
“제가 한창 활동하던 1980년대엔 음악다방 DJ가 굉장히 인기가 많았어요. 다방 밖에서 기다리는 소녀팬들을 피해 뒷문으로 도망갔을 정도니까요. 당시 대졸자 초임이 20만원 정도였는데, 저는 200만원을 받을 정도로 넉넉했고요. 당시의 영광은 없고 지금은 쇠락했지만, 전 이 일이 여전히 좋아요.”
이제 음악다방은 과거처럼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다. 젊고 잘생겼던 ‘오빠 DJ’도 이젠 돋보기를 들어야만 레코드판의 글씨가 보이고, 형형색색으로 메모지를 꾸며 수줍게 내밀던 소녀들도 주름진 손마디를 탓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메모지에 올린 사연과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그들을 젊고 예뻤던 시절 그 추억 속으로 끌고 간다.
안양=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비틀스의 음악은 신청하는 이들이 많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음반을 꺼내 상태를 살펴보는 것도 DJ에겐 중요한 일이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돋보기를 들고 음반의 작은 글씨를 읽고 있는 성시훈씨. 한겨레 윤운식 기자
음악을 신청하는 작은 창구. 한겨레 윤운식 기자
한 중년 여성이 메모지에 사연과 신청곡을 쓰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진행용 멘트를 적은 종이들. 일종의 대본이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성시훈씨가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리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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