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이 많다.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다. 가장 많다는 사실만 분명할 뿐, 얼마나 많은지는 확실치 않다. 발표 기관마다 HIV 감염인 수가 다르다. 남아공개발은행은 760만 명(2007년), 남아공보험통계협회는 560만 명(2008년)으로 추산하고 있다. 어느 경우건 4900만 인구 가운데 10~15%가 HIV 감염자라는 뜻이다.
HIV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발병시킨다. 남아공에서 에이즈 발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70만 명으로 추산된다. 남아공 정부는 월드컵 개막 직전인 지난 4월 ‘HIV 보균 검사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발표했다. 2011년까지 1500만 명을 상대로 감염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프로젝트가 실현된다 해도 전 국민의 70%는 HIV 감염 여부조차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지난 5월19일, 남아공 프리토리아 인근 쇼상구베 마을에서 HIV 감염인들을 만났다. 이 마을은 ‘HIV 감염 환자촌’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남아공의 시골 마을이다. 그런데도 에이즈 발병자는 부지기수였다. HIV 감염 사실을 아직 모르는 ‘장차의 에이즈 발병자’는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힘들었다. 사진 촬영을 허락한 이들 가운데 코개초 프리지아(20)는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 숨이 차서 침대에만 누워 있는 그는 “약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12살 아들과 함께 HIV에 감염된 우불라니 패트릭(35)도 약을 먹는다. 낡은 양철집에 살고 있는 그녀는 “생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 약”을 하루 6종류씩 먹는다. 약값은 무료인데, 약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교통비는 자신이 지불해야 한다. 정부가 HIV 감염자에게 주는 보조금 1천랜드(약 15만원) 중 800랜드를 월세로 내고 나머지 200랜드로 생활하는데, 병원 왕복 교통비가 40랜드다. 그는 빵 대신 약을 먹는다.
건강하고 위생적인 생활만 하면 HIV 감염자도 오래 살 수 있다. 하지만 남아공의 극심한 가난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현재 남아공의 기대 수명은 47살이다. 1990년엔 63살이었다. 사라 산다네(54)는 초등학생인 두 딸을 남기고 5월7일 에이즈로 죽었다. 아이들의 아빠 역시 에이즈로 사망했다. 아이들은 이제 고아가 됐지만, 우선 급한 것은 장례를 치르는 일이다. 친척들은 사망 열흘이 지나서야 돈을 구해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이 집에서 촛불은 유일한 조명 도구였다.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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