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고 믿는다. ‘블랙퀸’이라는 무명 댄스팀인 우리도 화려하게 빛날 날을 기다린다. 여기는 대구의 한 대학교 신입생 환영 축제 현장. 전날 서울의 연습실에서 새벽까지 춤을 추며 공연 준비를 했다. 몸이 천근이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춤을 출 생각을 하니 마음은 가볍다. 곡 선정도 탁월하다. 비욘세의 . 누구나 흥겨운 리듬에 몸이 들썩일 음악이다. 비욘세도 울고 갈 파워풀한 춤을 추며 관객의 반응을 살핀다. 무명의 서러움이 이런걸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실력으로 완벽한 무대를 꾸몄다고 생각했는데, 무명의 춤꾼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반응은 썰렁하다. 격렬한 춤 때문에 나오던 거친 숨이 지친 한숨으로 바뀐다.
‘블랙퀸’은 리더인 나 김잔디(26)와 황지현(26)·이주영(23)·조은별(22)·김선아(19) 5명으로 꾸려졌다. 거리에서 춤추다 눈이 맞고 인터넷에 올려진 공연 동영상을 보고 반해 찾아 온 이들로 팀을 꾸린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우린 모두 최고의 춤꾼이 되겠다는 같은 꿈을 가지고 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춤추는 우리를 보고 주변에서는 “춤에 미친 것들”이라고 했다.
아직은 지방 행사장을 떠돌며 곤궁한 생활을 하는 처지지만 언젠가는 공중파 TV를 장식할 유명 연예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백댄서와 연예인 춤선생을 거쳐 30대에 뒤늦게 가수로 데뷔한 에프터스쿨의 가희가 우리의 롤모델이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렇게 유명해질 것이다. 20대 중반인 나도, 10대인 막내 선아도 꿈을 이룰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무대에선 나도 스타”라는 자부심이 우리를 춤추게 한다. 마트 오픈 행사, 지방 대학 축제 등 지역이나 행사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춤을 출 수 있는 무대면 어디든 달려간다. 아직 방송 출연도, 정식 음반을 낸 적도 없다. 우리 노래가 없으니 비욘세·푸시켓 돌스·티아라 등 다른 여가수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언젠가 우리가 부른 노래에 맞춰 춤을 출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연예인들 뒤에서 춤이나 추는 일은 하지 말라”던 부모님도 무대 위의 우리를 보고 꿈을 지지해준다. 누구도 쉽게 스타가 되지 않는다.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달콤한 열매를 맛 볼 것이다. 춤이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리라.
사진·글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나훈아, ‘왼쪽 발언’ 비판에 “어른이 얘기하는데 XX들 하고 있어”
[단독] “윤석열, 체포 저지 위해 무력사용 검토 지시”
불교계, ‘윤석열 방어권’ 원명 스님에 “참담하고 부끄럽다”
‘군인연금 월500’ 김용현, 체포 직전 퇴직급여 신청…일반퇴직 표기
임성근 “채 상병 모친의 분노는 박정훈 대령 말을 진실로 믿은 탓”
대통령 관저 앞 집회서 커터칼 휘두른 50대 남성 체포
경호처 직원 ‘전과자’ 내모는 윤석열…우원식 “스스로 걸어나오라”
판사 출신 변호사 “경호처 직원 무료변론…불법적 지시 거부하길”
영장 재집행 않고 주말 보내는 공수처…‘경호처 무력화’ 어떻게
1월 13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