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경남 통영시 일대에서 연극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로 창단된 극단 ‘벅수골’은 그야말로 통영 예술의 자존심이자 문화의 산증인이다. 통영의 유일한 극단인 벅수골이 4년 전부터 매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아름다운 통영의 앞바다를 수놓은 섬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연극 보따리를 풀어놓는 일, 이른바 ‘섬마을 순회공연’이다.
“섬에 사는 주민들은 문화 공연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통영에 있는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그래서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기를 묻는 질문에 극단 대표인 장창석씨가 말했다.
처음 연극을 들고 섬에 들어갔을 때 주민들의 반응은 ‘뭐 팔러 왔냐?’는 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공연이 입소문을 타자 최근엔 공연이 없는 주변의 작은 섬마을에서 직접 자신의 고깃배를 몰고 보러오는 열성팬도 생겼다.
“처음엔 공연 중에 한 할머니가 큰 소리로 ‘파 캐러 가자’고 하는 겁니다. 그러자 다른 할머니들도 우르르 일어나는데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근데 지금은 노하우가 붙어서 제가 받아치죠. ‘마 퍼뜩 다녀오이소’ 이렇게요.”
이몽룡 역을 맡은 이규성씨가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말해준다.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앞으로는 더 작은 섬마을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 번 섬마을 순회공연을 하면 10여 일씩 집에 못 들어가고 이섬 저섬을 시간 맞춰 옮겨다니려면 사정이 녹록지 않다. 그야말로 즐기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일이다.
10월13일 통영에서 배로 30분 떨어진 비진도 마을회관 앞에서 올해 섬마을 순회공연의 첫 일정이 시작됐다. 이장님의 안내방송에 주민들이 하나둘 모인다.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향단이와 방자의 익살에 폭소가 터진다. 30여 명의 관객 사이를 휘젓고 다니면서 변 사또가 도망간다. 파란 가을 바다를 무대 삼아 춘향이와 이 도령의 로맨스가 펼쳐진다. 도심에서 끊어진 문화의 향기가 파도를 넘어 섬마을로 넘실거린다. 푸른 통영 앞바다는 찾아가는 문화로 그 빛이 더한다.
통영=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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