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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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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깃발 든 바람 타는 섬

해군기지 설립 반대하는 제주 서귀포 강정동 주민들, 도지사 소환 서명운동
등록 2009-05-30 11:07 수정 2020-05-03 04:25
최병수 작가가 만든 설치미술  너머 서귀포시 강정동 해안가에 해군기지 유치 반대 깃발을 설치하는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멀리 범섬이 보인다.

최병수 작가가 만든 설치미술 너머 서귀포시 강정동 해안가에 해군기지 유치 반대 깃발을 설치하는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멀리 범섬이 보인다.

제주도 남쪽, 우뚝 솟은 범섬을 마주 보는 해변에 해군기지 설립 반대를 외치는 노란 깃발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함성을 지른다. 집집마다, 화훼 하우스마다 노란 깃발은 어김없이 펄럭인다.

정부가 제주에 해군기지를 짓겠다고 처음 나선 건 1993년 12월이다. 서귀포시 화순항에서 시작한 기지 후보 지역이 위미1리와 2리를 거쳐가며 바뀌는 사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하면, 정부는 슬그머니 다음 장소를 찾아 이동했다. 계획도, 원칙도, 적절한 여론수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편법만 난무했다. 그러던 지난 2007년 5월 김태환 제주지사는 ‘도민 여론조사’를 근거로 강정동을 해군기지 최우선 대상지로 선정·발표했다. 화순에서 5년, 위미에서 2년 걸린 일이 강정동에선 단 일주일도 안 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솟대 위로 솟은 구름 조각 옆으로 기지 유치 반대와 도지사 퇴진을 요구하는 깃발이 펄럭인다.

솟대 위로 솟은 구름 조각 옆으로 기지 유치 반대와 도지사 퇴진을 요구하는 깃발이 펄럭인다.

조용하던 마을은 기지 유치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로 갈렸다. 기지 문제로 마을의 평화는 깨졌다. 그해 8월 강정동 주민들은 찬반투표를 했다. 1400여명 가운데 725명이 참가해 680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소용없었다. 군과 도당국은 주민투표 결과를 무시했다. 기지 유치는 어느새 지역발전과 동의어가 돼버렸다. 눈 귀 막은 당국의 일방통행에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삭발이 고작이었다.

지난 4월27일 정부와 제주도는 이른바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을 위한 기본협약서(MOU)를 체결했다. 도당국은 “최대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주민도, 도의회도, 제주 시민사회도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도지사 주민소환투표 서명운동은 그렇게 싹텄다. 지난 5월14일 서명운동을 시작한 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서명자가 1만명을 넘어섰다. 하루 700명 넘는 도민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강정동 사거리.

강정동 사거리.

서명운동 일정표 앞에서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한 주민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서명운동 일정표 앞에서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한 주민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5월20일 오전 강정동 마을회관에서 서명 용지를 정리하던 주민 윤호경씨가 쓰게 입을 열었다. “아무리 국가안보사업이라도 내용을 인식시키고 충분히 주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살고 있는 땅을 내놓으라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강정동 일대는 일반적인 제주도 지형과 달리 용출수가 솟아올라 서귀포 시민들에게 식수를 제공하는 강정천을 끼고 있다. 방사탑처럼 우뚝 솟은 마을 앞바다 범섬과의 사이엔 천연기념물 제44호인 연산호 군락지가 넓게 퍼져 있다. 2006년엔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긴, 그 한 해 전인 2005년 1월 정부는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 제주가 다시 치열한 전쟁터로 바뀌고 있다.

돌로 쌓은 방사탑에 주민들의 소망이 들어 있다.

돌로 쌓은 방사탑에 주민들의 소망이 들어 있다.

서귀포=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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