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30일, 전북 완주군 상관면 원룡암에서 ‘오체투지’의 하루를 또 시작한 순례단이 완주군 죽림온천에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평소와 달리 세 성직자가 함께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종훈 신부가 동참하게 된 것. 지난 8월 말 전 신부가 이례적으로 안식년 발령을 받은 뒤 촛불집회 시국미사 등을 주도한 데 대한 문책성 인사가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고, 오체투지 순례단이 첫발을 떼던 지난 9월4일부터 전 신부가 동참할 것이라는 말이 들렸다. 통일미사 등 사제단의 다른 일정으로 동행이 연기됐을 뿐이다.
전 신부에게는 순례 둘쨋날인 10월1일, 한 구간 한 구간 진행할 때마다 얼굴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었다.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걱정에 “좋다. 정말 좋다. 그동안 갑갑했는데, 참 좋다”며 외려 순례단의 힘을 북돋웠다. 그의 동참을 “땅을 기어가는 자벌레 한 마리가 늘었다”고 순례단은 표현했다. “자벌레는 앞으로 가려고 몸을 움츠린다. 오체투지 순례도 앞으로 가려고 자신의 몸을 낮춘다. 이 어려운 걸음에서 우리는 평화를 얻는다. 단 한 번의 오체투지에 모든 것을 집중한다. 자벌레처럼 가장 낮은 위치에서 세상을 볼 수 있기에 마음도 더없이 평화롭다.”
순례단 진행을 맡고 있는 생태지평연구원의 명호씨는 “쉴 때 안마나 지압을 해드리고 싶지만 너무 힘들고 지친 상태라 그 자체가 아픔이 돼서 못한다. 그냥 살살 몇 번 주물러드리고 만다”며 안타까워했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사람과 생명, 평화의 길을 찾아’ 지난 9월4일 전남 구례 지리산 노고단에서 순례길을 나선 지 10월1일로 28일째. 오체투지는 이마와 사지를 땅바닥에 닿도록 절하는 불가의 오래된 수행법이다. 나이 60이 넘은 이들에게는 무리다. 그런데도 이들은 달팽이처럼 기어 계룡산과 임진각을 거쳐 묘향산까지 가겠다고 한다. 왜 이런 고행을 자처하는 것일까.
세 수행자는 말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오체투지 순례는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몸짓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있는 촛불의 마음이다.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보며 다른 속도와 가치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서약이자 실천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어떤 힘도 가지지 않았지만 스스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혔던 촛불처럼 생명과 평화가 소통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수경 스님은 불교계 시국법회추진위원장을 맡아 서울광장 집회를 막후에서 연출했던 인물. 그래서 사람들은 “광화문에서 물대포로 꺼진 촛불이 지리산에서 봉화로 타오른다”고 평하기도 한다. 수경 스님은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차별이 불자들을 깨어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그런 면에서 이 대통령은 반면스승으로서 고마운 분”이라고 했다.
아스팔트에 반사된 가을 햇빛이 비수처럼 눈을 파고든다. 예부터 봄 햇살엔 딸을 일 보내고 가을 햇살엔 며느리를 보낸다고 하지 않았나. 무서운 햇빛에 달궈진 아스팔트에 몸을 밀착시킨 수행자들의 거친 호흡이 그야말로 신음이다. 명호씨의 말대로 “하는 이에게는 고행이지만 지켜보는 이에게는 고문”인 오체투지 순례가 오늘도 어느 길 위엔가 엎드리고 있다.
순례 참가 일정과 수칙은 cafe.daum.net/dhcpxnwl 참조
완주=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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