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움과 한숨이 엇갈리는 전북 임실군 강진면 ‘갈담장’ 열리는 날
▣ 임실=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산 깊은 마을에 장이 섰다. 전북 임실군 강진면 갈담리 갈담장.
시골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강진버스터미널 옆 공간에 자리를 깔고 무, 배추 등을 내놓으면 어느새 사려는 사람이 나타난다.
“오다 본께 참으로 경치가 안 좋소?” 집에서 농사지은 마늘을 파는 아저씨가 말을 한다.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본 옥정호의 경치 자랑이 마늘 자랑을 앞선다.
“예전에 닥 팔 땐 닥 껍데기 짊어진 사람에 사려는 사람 뒤섞여서 말도 못하게 사람이 많았구만.”
갈담리는 한지를 만드는 닥나무의 주산지였다. 전북에 있는 어지간한 지소공장(제지공장)은 갈담장에서 닥을 사갔다고 한다. 사람도 많고 돈도 제법 많이 돌아 깊은 산골에 위치한 장치고는 제법 유명했다. 그러나 닥시장은 한지의 쓰임이 줄어들면서 빠르게 쇠퇴했다. 중국에서 들어온 종이는 그나마 명맥만이라도 유지하던 닥을 사라지게 했다. 15년 전부터 이곳에서 닥나무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보면 제법 장날 분위기가 난다. 생선을 파는 곳은 여전히 인기다. 꽁꽁 언 갈치가 도마 위에서 잘리는 것을 보면 오늘 저녁 반찬으로 갈치 지지는 모습이 떠올라 허기를 느낀다. 냄비는 꾸준한 인기 품목이다. 계절맞이 옷을 널어놓은 좌판에도 아낙들이 넘친다. 터미널 뒤편 구석에 자리잡은 시골 미용실은 모처럼 나온 할머니들의 머리볶기 전시장이다. 멸치 국물에 말아 파는 2500원짜리 국수가 어찌나 양이 많은지 양은 그릇이 넘칠 지경이다. 선술집은 막걸리 잔들이 오고 가며 거나해졌다. 장사치도 이곳을 찾는 손님도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눈치다. 물건값이 오고 가다 이내 서울 간 자식들 자랑이 이어진다. 새우젓을 파는 할머니는 자기 물건은 간수 안 하고 옆 노점의 옷을 파는 데 나서 흥정을 붙인다.
그렇지만 장날은 예전만 못하다. 농촌의 인구와 수입이 줄어든 것은 감출 수 없다.
“장사가 안 돼. 뭘 팔려 해도 사람이 귀한 게 장이라고 할 수도 없고….” 트럭에 생필품을 싣고 전라도 지역을 돌아다니는 아주머니가 한숨을 쉬며 얘기한다.
점심때가 되기도 전에 장은 파하는 분위기다. 모종을 팔던 아저씨는 시멘트 바닥에 벌떡 누워버린다.
“아고, 덥고 사람도 없고 잠이나 자야 쓰겄다!”
터미널 앞에 자리를 깔고 배추를 팔던 아낙네도 꾸벅꾸벅 졸더니 이내 구석 자리에 누워버린다.
“시방은 모내기 철이니께 사람이 더 없어. 나도 농사지러 가야 겄네.”
열무를 팔던 할머니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주섬주섬 자리를 접는다.
언제까지 이런 장날이 계속될지 모르지만 점점 소멸해가는 장날만큼 고향의 정도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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