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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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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몸의 마지막 안식처, 만화방

등록 2006-08-24 00:00 수정 2020-05-03 04:24

서울역 앞 ‘천국만화’에서 잠자고 빨래하고 라면을 먹는 사람들… 80년대 중반까지 많았던 만화가게도 대여섯 집만 남아 명맥 유지

▣ 사진·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글·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안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청계천 주변에 ‘하꼬방’을 지었고, 서울 근교 야산에 무허가 건물 숲을 일궈냈으며, 급격한 도시화가 이뤄진 강남 곳곳 자투리땅에 비닐하우스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청계천에는 새 생명이 흐르고, 산동네들은 초고층 아파트 숲으로 탈바꿈했는데, 비닐하우스촌들은 주변의 개발 붐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천국만화 주인 김동순(51)씨는 “욕심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 식구들은 참 소박하다”고 말했다. 그는 4년 전 우연한 기회에 가게를 인수하게 됐다. 서울역 앞 만화가게에는 하꼬방과 판잣집과 비닐하우스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천국만화는 2층에서는 만화를 보고, 3층에서는 잠을 자는 구조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은 만화방에서 잠을 자고, 빨래를 하고, 라면을 먹고, 일자리를 구했다. 김씨는 “심성이 고운 사람들과 같이 살다 보니 별로 고단한 것을 모른다”고 말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역 앞에는 천국만화·경일만화·제일만화 등 24시간 동안 누워 뒹굴며 만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많았지만 이젠 겨우 대여섯 집 남아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입장료는 3시간 기본에 2천원, 하루 종일 머무르려면 8천원이다.

서울역 앞 만화방들이 사라지고 나면, 이제 그들은 어디에서 고단한 영혼을 달랠 수 있을까. 해가 졌는데도 날은 계속 더웠고, 사람들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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