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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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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줘! 매 부부의 뉴욕 스토리

등록 2004-12-31 00:00 수정 2020-05-03 04:23

10년간 사랑 받아온 맨해튼 빌딩의 ‘페일메일’… 철거 당할뻔한 둥지, 뉴욕 시민들 도움으로 복구 중

▣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1991년 겨울 뉴욕 센트럴파크 근처에 붉은 꼬리매 수컷 한 마리가 나타났다. 센트럴파크엔 비둘기나 설치류 같은 먹잇감이 있긴 하지만 매가 둥지를 틀고 산 적은 없다. 그 수컷은 자주 모습을 보이면서 두 차례 둥지를 틀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마침내 1995년 어느 날 센트럴파크가 잘 내려다보이는 맨해튼 5번가의 고급 아파트 12층 처마 장식 위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는 털빛이 갈색인 여느 붉은 꼬리매와 달리 유난히 창백해 보이는 흰빛으로 인해 ‘페일 메일’(pale male)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페일 메일은 10여년 동안 뉴욕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동안 최소 1권의 책과 2편 이상의 다큐멘터리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cnn> 앵커, 영화배우 등 아파트 입주민에 못지않은 유명세를 누려왔다. 짝을 이루던 암컷들이 세 차례나 독이 든 비둘기를 먹고 죽는 등 사고를 당해 지금은 네 번째 암컷 로라와 4년째 살고 있다. 매는 일부일처제라 다른 짝이 죽었을 때만 새로운 짝을 찾는다. 1995년부터 적어도 23마리 이상의 새끼를 낳아 길렀는데, 뉴욕 시민들은 매년 늦봄이면 새끼의 첫 비행을 기다리면서 아파트 건너 공원에서 장사진을 이루어 지켜보다 환호하곤 한다.


그 보금자리가 지난 12월7일 철거당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매가 먹다 남긴 동물의 잔해와 배설물이 아파트 앞에 떨어져 지저분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소식이 전해지자 동물 애호가들과 페일 메일 부부를 사랑해온 수많은 시민이 연일 시위를 벌이고 시당국에 압력을 가했다. 페일 메일을 쫓아낸 일은 선정 ‘2004년 최악의 발상’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4년 12월15일 결국 야생동물 보호단체와 입주민들간에 둥지를 복구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사이 한때 인근의 다른 고급 호텔 건물 옥상에 둥지를 틀 조짐을 보이자 호텔 지배인은 “하룻밤 1500달러짜리 호텔에 온 것을 너무 환영한다. 우린 언제나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아직 룸서비스 요청은 없었다”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페일 메일과 로라는 결국 다른 어디에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아직 5번가의 옛 보금자리 주변을 계속 맴돌며 계속 나뭇가지를 물어와 그 자리에 둥지를 다시 틀어보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둥지 지지대가 철거되어 헛일이 되고 있어 그를 지켜보는 시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둥지 지지대가 복구되더라도 달라진 환경을 꺼릴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결국 그 자리에 둥지를 지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3일 마침내 공사가 끝났다. 이날 오후 시민들은 5번가 아파트앞에서 마지막 집회를 열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며 둥지지지대를 복구한 것을 자축했다.
모든 사진은 링컨 카림의 홈페이지(palemale.com)에서 공개된 것이다. 카림은 페일 메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홈페이지의 모든 사진을 일반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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