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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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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번진 3년치의 눈물

이태원 참사 뒤 유가족·정부가 함께 연 첫 추모대회, 너무 늦은 위로에 오열과 분노
등록 2025-10-30 22:54 수정 2025-10-31 07:21
보랏빛 점퍼를 입은 이태원 참사 국내외 유가족들이 2025년 10월25일 저녁 열린 3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희생자 한명 한명의 이름이 불리는 동안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보랏빛 점퍼를 입은 이태원 참사 국내외 유가족들이 2025년 10월25일 저녁 열린 3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희생자 한명 한명의 이름이 불리는 동안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서울 한복판 서울광장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이태원 참사 3주기를 나흘 앞둔 2025년 10월25일 시민추모대회가 열린 서울광장 가설무대 앞에 보랏빛 점퍼를 입은 국내외 유가족들이 자리했다. 광장 한쪽 서울시청사 8·9층에도 보랏빛 등이 불을 밝혔다.

참사 뒤 유가족과 정부가 함께 연 첫 추모대회다. 정부를 대표해 김민석 국무총리가 참석해 추모사를 했다. 김 총리는 외국인 유가족들이 앉은 자리로 가서 손을 잡은 채 인사말을 건네고 눈물을 흘리는 두 어머니를 안아주며 위로했다.

행사를 주관한 행정안전부 윤호중 장관도 자리했고, 그 옆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앉았다. 사회자가 오 시장을 소개할 때는 대회장 곳곳에서 “물러가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앞서 10월23일 국무조정실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대통령실 인근 집회 경비에 인력이 집중되면서, 이태원 일대에는 참사 당일 경비 인력이 전혀 배치되지 않았다”는 합동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직원들에게 대통령실 주변의 윤석열 당시 대통령 비판 전단 제거 업무를 시키면서 사고 예방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을 자랑삼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거리에서 159 청춘의 꿈과 생명을 앗아간 비문명적 참사는 그에 이르기까지 부인할 수도 숨겨지지도 않는 원인과 책임이 뚜렷이 존재한다. 한데 3년이 다 되도록 진상이 가려진 것은, 당시 최고 권력자와 그만 바라보며 시민의 안전을 외면한 공직자들이 건재했던 탓이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실 이전으로 경찰력이 시민의 안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에 사과하고, 우리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그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 서울시민의 안전과 무관할 수 없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희생자 추모를 위해 서울광장 한 귀퉁이에 분향소를 설치한 유가족들에게 행정대집행을 예고하며 겁박하지 말았어야 했다.

‘별들과 함께, 진실과 정의로'라는 주제의 추모대회는 참사 당일 첫 신고가 접수된 시각인 저녁 6시34분 시작됐다. 모든 희생자를 기억에 새기려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호명식이 진행되는 동안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특히 정부의 초청을 받아 이 자리에 참석한 외국인 희생자 21명의 유가족들은 무대 위 화면을 가득 채운 딸·아들의 캐리커처와 함께 불린 이름을 들으며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신음을 토해냈다.

무대에 오른 송해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희생자 이재현씨의 어머니)은 “설렘을 품고 이태원을 향한 청년들이 평범하지만 소중한 순간을 누려야 할 그날, 159개의 꿈은 사라졌고 159개의 미래는 멈춰버렸다”며 “지난 3년 동안 유가족들은 아이를 잃은 슬픔뿐 아니라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향한 끊임없는 2차 가해와 홀로 싸워야 했다”고 말했다. 또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었을 생존 피해자·목격자를 향해 ‘정의의 문’을 여는 증언을 간절히 요청했고, 시민들에게는 관심과 연대를 호소했다.

과거 정부의 조사 방해를 넘어 이제 제대로 진실을 밝힐 책임을 걸머진 송기춘 10·29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보라색 스카프를 두르고 추모대회에 참석했다. 참사 두 해 뒤 입법기관에 군병력을 보내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한 윤석열 정부가, 참사가 빚어진 원인과 책임을 가리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시민추모대회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권수정씨의 이름이 불리는 동안 권씨의 캐리커처가 무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시민추모대회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권수정씨의 이름이 불리는 동안 권씨의 캐리커처가 무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오른쪽 선 이)가 유가족협의회 관계자(왼쪽 선 이)의 안내를 받아 외국인 유가족을 만나러 가는 동안 오세훈 서울시장(앞줄 왼쪽 셋째)이 자리에 앉아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오른쪽 선 이)가 유가족협의회 관계자(왼쪽 선 이)의 안내를 받아 외국인 유가족을 만나러 가는 동안 오세훈 서울시장(앞줄 왼쪽 셋째)이 자리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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