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법 제16조의 규정에 의거 현역병 입영을 통지함.” 인천경기지방병무청장은 사무적인, 메마른 명령을 하고 있었다. 애초 ‘명령’은 메마른 것이던가. ‘생명’을, 나와 같은 인간을 죽이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젊은이에게 내리는 국가의 명령에는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고, 너무도 ‘불친절’했다. 아무튼 2010년 12월14일 13시30분까지 경기 의정부 용현동 306보충대로 가야 했다. 그러나 가지 않았다. 대신 문명진(26)씨는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제가 이해하는 ‘안보’는 각자가 안전함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법을 배우고 살상훈련을 하는 것은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군대에서 서로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을 경험하게 될 자신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양심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명하달의 조직문화,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와 같은 군사문화가 군대를 통해 사회 전반에서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는 타협할 수 없는 제 내면의 진지한 목소리이며 이런 저의 신념을 도저히 속일 수 없었기에 기꺼이 병역거부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지난 8월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문씨는 “2006년 평택 대추리에서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군과 경찰이,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자국 국민을 적으로 몰아 공격하는 모습을 보며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꼈다”며 “이때의 경험으로 병역거부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내가 ‘평화로운 사람’이어서 병역거부를 결심한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평화주의에 대한 생각을 심화하게 됐다”고도 했다.
‘모범생’으로 살아온 문씨가 이제 기어이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우리 사회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길로 들어섰다. “상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되는” 감옥에도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 죽어도 괜찮은 생명은 없다”며 “병역거부가 나로 하여금 타인의 상처와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공감하며 살도록 깨우쳐주는 자극이 됐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진·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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