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마음에 붙은 빨간 딱지

등록 2010-11-12 10:47 수정 2020-05-03 04:26
재능교육 오수영 사무국장

재능교육 오수영 사무국장

지난 10월14일 시어머니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고 오수영(36) 재능교육 노조 사무국장이 집으로 달려왔을 때는 이미 법원 집행관과 회사 쪽 사람들이 사라진 뒤였다. 대신 평소 없는 살림에 어렵게 장만해놓은 몇 가지 물건들에 빨간 가압류 딱지가 붙어 있었다.

서울의 대표적 장기 노사분규 사업장인 재능교육. 1천 일 넘게 계속되는 노조의 파업과 시위에 대응해 회사 쪽은 2008년 2월 서울북부지법에 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냈고,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자 오씨와 노조 사무실 등에 대해 가압류 절차를 진행했다. 현재 오씨의 집에는 컴퓨터와 텔레비전, 세탁기, 김치냉장고, 장롱 등 5개 품목에 모두 감정가 127만원의 가압류 딱지가 붙어 있다.

“정말이지 회사가 이렇게까지 치졸할 줄은 몰랐어요. 평생 노동운동 한 사람들도 노조원 개인의 집에 들어가 개별 재산에 빨간딱지를 붙이는 것은 처음 봤다더군요.”

오씨는 2001년 학습지 교사로 이 회사에 입사했다. 오씨가 파업에 참여한 것은 노조 사무국장을 맡기 시작한 2007년 4월부터다. 임금 삭감과 해고 압력 등에 맞서 파업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1천 일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예요. 업무 지시는 회사로부터 받지만, 회사로부터 어떤 권리도 보장받지 못합니다. 노동자이지만 노동자의 보호를 못 받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처우 개선을 외치는데 집에 있는 살림까지 빼앗아가겠다고 달려드는 꼴입니다. 우리는 그냥 이 땅에서 다 죽으라는 건가요?”

11월10일엔 가압류된 물건의 경매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오씨는, 그러나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다.

“거세게 몰아붙이는 건 결국 끝이 얼마 안 남았다는 방증입니다. 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이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면서, 머리띠 묶는 것부터 한 사무실을 쓰던 정규직 동료들에게 끌려나와 땅바닥에 팽개쳐지는 일까지 모든 걸 겪었습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차별 없이 살고 싶다는 소망에 이 사회가 붙인 빨간딱지가 오씨의 마음을 짓누르지만 그래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