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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나고 밀려나는 1평의 삶

등록 2010-08-26 22:37 수정 2020-05-03 04:26
밀려나고 밀려나는 1평의 삶

밀려나고 밀려나는 1평의 삶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한여름, 비닐로 지붕을 엮은 1평 남짓한 공간의 불 옆에서 튀기고 쪄내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몸은 땀으로 젖는다. 목에 감은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버텨보지만, 손님이 뜸한 시간엔 그도 어쩔 수 없이 의자에 앉아 잠깐이라도 불을 피하고 냉수를 마시면서 몸을 식힌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떡볶이와 튀김 등을 파는 노점상 임태완(48)씨. 임씨가 처음부터 노점을 한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 의류도매업을 할 당시엔 월매출 1억∼2억원의 잘나가는 사장님이었다. 지인에게 사기당하면서 사업이 기울어지더니, 가족들이 카드빚까지 얻어가면서 돌아오는 빚을 막아보려 애썼지만 결국 1999년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그땐 너무 살기 힘들어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죽기 전에 노점이라도 해보자 해서 팔다 남은 옷가지 몇 개를 들고 길거리로 나갔죠. 그러면서 노점을 하게 된 겁니다. 길바닥에서 장사한 게 올해로 10년째입니다.”

처음엔 쉽게 보고 시작한 노점이지만 이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중 임씨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걸핏하면 나오는 단속이다. 리어카도 빼앗기고 물건도 빼앗기면, 관공서에 찾아가 각서 쓰고 벌금 내고 찾아오길 수차례 했다.

“처음엔 단속 때문에 못해먹겠더라고요. 근데 나중엔 의례적으로 겪는 일이라 ‘눈치’라는 게 생겼어요. 요즘엔 같은 처지에 있는 노점상끼리 연대하니까 조금은 힘이 생기는 것 같고요.”

임씨 같은 노점상에게는 대규모 국가 행사가 그다지 반갑지 않다. 과거에도 국가 행사를 핑계로 막무가내식 단속이 이뤄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행사를 앞둔 요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노점을 무조건 들어내고 부수는 식으로 단속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오죽하면 길거리로 나오겠습니까? 생존의 문제입니다. 우리도 국민인데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거니까 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줬으면 합니다. 협조를 구하면 우리도 특별한 기간에는 얼마든지 협조할 용의가 있거든요.”

노점상들은 길거리에서 그대로 노출돼 생활하다 보니 육체적·정신적으로 많이 힘들다. 임씨도 노점상 10년 만에 몸 구석구석 병을 달고 살지만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꿈요? 빨리 노점을 관두고 싶어요. 그냥 조그만 분식점을 내서 아침에 문 열고 저녁에 문 닫고 이러면서 살고 싶어요.”

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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