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몰랐다. 그냥 아저씨, 아줌마로 불렀다. 출근길 담배를 사러 들르는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앞 대성슈퍼. 신문사가 들어서기 전 그 터에 고무공장이 있을 때부터 같은 자리에서 40년 동안 슈퍼를 운영해온 부부다. 1971년 고무공장에서 근무하던 김용갑(60)씨는 대성슈퍼를 운영하던 이정옥(60)씨를 만나 1975년 결혼했다. 지금까지 40년 세월을 이곳에서 함께했다.
그런 적이 없는데, 지난 4월29일 담배를 샀더니 비타500 한 병을 건넨다. “접기로 했어.” 한 달 전 대성슈퍼 근처에 패밀리마트가 문을 열었다. 한겨레신문사 출입구 바로 건너편이어서 슈퍼보다 서른 걸음 정도 가깝다. 갖가지 물건이 가지런하게 정돈된 편의성 때문일까. 현금영수증이나 통신사 할인, 캐시백 포인트 적립 등의 실속 때문일까. 편의점 손님이 늘어난 만큼 슈퍼 손님은 줄었다.
가게 안에는 주인 것 말고 의자가 하나 더 있다. 마실 나오듯 찾아오는 동네 사람들을 위해서다. 동네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이곳 슈퍼에서 공유된다. 기껏해야 하루 평균 2500원 정도의 매출을 올려줄 뿐인 단골 고객의 의리에도 고마워하는 아저씨, 아줌마였다.
이제 대성슈퍼 자리는 GS25가 차지한다. 이 한갓진 동네에서도 서민 자영업자는 밀려나고 대기업 편의점들의 전쟁이 벌어질 판이다. 동네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마실 나와 서로의 삶을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결혼과 함께 반평생 넘게 운영해온 가게를 접으면 아저씨, 아줌마는 무엇을 할까? “슈퍼를 하며 딸 넷을 키웠고 먹고살 만큼은 있어. 뭘 새로 시작하기는 그렇고 여행이나 다닐까….” 참말이기를 바란다.
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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