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속 이한열은 1987년 연세대학교 학생이었다. 1987년 6월10일 열린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전두환·노태우 군부독재 타도 민주헌법 쟁취 범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6월9일, 6·10 대회 출정 연세인 결의 대회에서 이한열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을 거뒀다. 이한열의 죽음으로 국민들은 침묵하지 않고 거리로 쏟아져나와 민중의 민주화 요구를 탄압하고 군부독재 체제를 연장하려 했던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시대를 종식시켰다.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앞둔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구묘역)에서 이한열이 민주열사들과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광주=사진·글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공수처, ‘경호처장 강제구인’ 뒤 윤석열 체포영장 재집행 가능성
[단독] 윤, 국무위원들 계엄 반대 와중에 “발표해야 하니 나는 간다”
‘공수처와 관저 대치 의혹’ 군인들, 김용현 경호처장 때 배치됐다
[단독] 문상호 “1인당 실탄 10발 준비”…계엄 당일 지시
경찰, ‘윤 체포 방해 의혹’ 55경비단장에게도 출석 통보
[영상] 공수처 “군·경호처 200명 팔짱 끼고 체포 막아…일부 총기 소지”
김흥국 “박정희·전두환보다 윤석열이 더 잘해…오야붕 지키자”
버티는 윤석열에 보수언론도 “비겁하기 짝이 없다”
‘화살촉 머리’ 플라나리아, 국내서 신종 21종 발견
[영상] 바리케이드·군용차·버스·인간벽…윤석열 체포 위해 산길까지 뚫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