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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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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과 죽림의 화이부동

등록 2012-02-29 15:42 수정 2020-05-03 04:26



전남 담양의 죽녹원을 찾은 2월21일 오후, 렌즈는 운 좋게도 눈을 만났다. 촘촘한 댓잎 틈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어둑한 대숲 그늘에 희푸른 눈송이가 수직의 점선들을 그려놓았다. 이 기묘한 흑·녹·백의 조화 앞에서, 20년 전 황지우가 쓴 겨울시 한 단락을 떠올렸다. 그는 1988년부터 만 4년을 이 대나무와 백일홍의 땅에 머물며 시를 썼다.
눈 맞는 대밭은 딴 세상이 이 세상 같다
눈덩이를 이기지 못한 댓가지 우에
다시 눈이 사각사각 쌓이고 있다
여기가 이 세상의 끝일까
몸을 느끼지 못하겠다

(‘눈 맞는 대밭에서’)

담양=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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