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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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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 못한 말

등록 2009-09-16 10:47 수정 2020-05-03 04:25

9월6일 북쪽이 황강댐 수문을 열었다. 갇혔다 풀려난 물이 야수로 변해 임진강으로 들이닥쳤다. 삽시간이었다. 강가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던 이들이 성난 물줄기에 휩쓸렸다. 모두 6명,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애꿎은 목숨이 스러졌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듣지 못한 말

듣지 못한 말

북은 댐 수위가 높아져 물을 내려보냈다고 했다. 남은 그런 북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경고도 없이 엄청난 수량을 흘려보낸 북이 잘못했다. 일찌감치 임진강 수위가 급격히 오르고 있음을 알고도 야영객을 대피시키지 않은 남의 책임도 덮기 어렵다. 부질없다. 6명이 숨졌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그 말이면 족하다.

9월11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병원 영안실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슬픔으로 상기된 얼굴로,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흐느끼고 있다. 살아남은 이들은 너나없이 서로를 보듬고 있다. 참아낼 수 없는 슬픔을 달래고 있다. 어디서도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을 듣지 못한 유가족들이 흐느껴 울고 있다. 북도 남도, 끝내 그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비정하다.

고양=사진·글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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