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마지막 열기를 토해내던 해가 산 너머로 지며 산 그림자를 드리웠다.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하늘에 달이 떠오르고 길 건너 장터의 전등이 불을 밝히자 눈앞이 온통 캄캄해졌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천천히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하얀 꽃 무리. 가산 이효석은 이 꽃 무리를 보고 소설 에서 이렇게 썼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를 듣기에는 세상이 너무 시끄럽고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되기에는 인공 불빛이 너무 많지만, 복잡한 도시를 떠나 맞은 풍경 덕에 소설 속 허생원이 된 듯 애잔한 마음으로 밤기운을 느껴본다. 한가위를 한 달 앞둔 9월3일 저녁 소설의 무대인 강원 평창군 봉평 메밀밭 위로 밝은 보름달이 떠올랐다. 9월14일까지 제11회 평창 효석문화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평창=사진·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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