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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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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제 앞, 외제차 문은 열리지 않았다

분신 경비노동자 소속 회사와 내년 계약하지 않는
압구정동 ㅅ아파트, 요구사항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등록 2014-11-18 15:53 수정 2020-05-03 04:27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ㅅ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언에 시달리다 분신한 경비노동자 고 이만수씨의 영결식이 지난 11월11일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리고 있다. 류우종 기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ㅅ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언에 시달리다 분신한 경비노동자 고 이만수씨의 영결식이 지난 11월11일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리고 있다. 류우종 기자

“150만원이나 줬으면 됐지.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모멸감이냐.”

고 이만수씨가 근무했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ㅅ아파트 ○○○동으로 들어가던 한 남성 입주민이 유족들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11월11일, 주민의 폭언에 시달리다가 분신한 경비노동자 이씨의 노제가 열리던 날 유족들이 입주민에게 들었던 유일한 말이었다. 애통한 죽음을 위로하며 손잡아주는 입주민은 없었다. 이씨가 근무했던 ○○○동 앞 경비초소를 유족들이 처음 찾았던 참이다. 이곳에서 이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24시간 근무했다. 경비초소 안 전기장판이 놓여 있는 상판은 다리를 웅크려야만 겨우 몸을 누일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이씨가 분신을 시도했던 10월7일로부터 한 달이 넘었지만, 책과 탁상달력 등 그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유리창에 붙어 있는 ‘이만수 후원계좌’ 안내문만이 그의 부재를 증명했다.

“출근할 때 쓸개를 빼놓고 나왔다가…”

지난해부터 ㅅ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이씨는 ○△△동에서 일하다가 지난 7월 ○○○동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 다음부터 이씨의 마음고생이 시작됐다. “동을 옮긴 다음부터 잠도 못 자고 힘들어하더라고요.” 아내 유아무개씨가 말했다.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까지 했는데 내가 그냥 다니라고 했어요. 그땐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이씨가 힘들어한 가장 큰 이유는 ○○○동에 사는 ‘사모님’ ㄱ(74)씨 때문이었다. “신랑이 몇 번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화장실에 간다고 자리를 비우면 ‘왜 비우냐’고 잔소리하고, 꼬챙이를 들고 다니며 재활용품 분류해놓은 걸 뒤지면서 ‘이건 여기에 넣는 게 아닌데 왜 넣었냐’고 닦달한다더라고요.” 이씨는 결국 지난 8월부터 병원을 찾아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남편의 고통은 아내 유씨에게도 전이됐다. 귀울림과 현기증, 청력 저하 등을 동반하는 메니에르증후군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유씨는 2007년부터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다.

10월7일 아침에도 ㄱ씨는 이씨에게 “×× 같은 놈”이라며 청소를 제대로 안 한다고 타박했다고 한다. 분신 뒤 14일째가 되던 날 잠시 깨어났던 이씨는 ㄱ씨를 일컬어 “야, 청소 안 하고 뭐하냐(고 하더라). 그때 열받아서 지하로 내려가 시너를 들고 올라간 거지”라고 말했다.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온몸을 붕대로 친친 감은 상태에서, 죽은 사람의 피부 6천 장을 이식받는 등 고통스러운 수술을 견뎌내는 와중에 나온 이야기였다.

11월11일 ㅅ아파트에서 만난 다른 경비노동자들은 “ㄱ씨 같은 사람이 각 동마다 1명씩은 꼭 있다”고 털어놨다. 경비노동자 ㅈ씨는 지금도 2년 전에 당했던 모멸감이 잊혀지지 않는다. “도둑놈 취급을 받았다. 작은 택배 상자를 갖다주러 갔는데 내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걸 봤다는 거다. 얼마 뒤 그 집 주인이 자기 아들이 가져다놓은 돈봉투가 없어졌다며 석 달 동안 관리사무소에 와서 나를 내보내라고 압박을 넣었다.” ㅈ씨는 중간중간 가슴팍을 지그시 눌렀다. “그땐 잠도 안 오고 여기 가슴이 꽉 뭉쳐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렇다.” 결국 ㅈ씨는 다른 동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나중에 관리사무소에서 전해듣기로는, 돈봉투는 찾았다고 한다. 아들이 사무실에 갖다놓은 걸 미처 몰랐다는 거다. 또 다른 경비노동자 ㄴ씨는 “우리는 아침에 출근할 때 쓸개를 빼놓고 나왔다가 퇴근할 때 도로 집어넣고 간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ㄱ씨 분신 경비원 장례식장에서 눈물

ㅅ아파트는 1983년에 지어진 낡은 복도식 아파트다. 50평형대 아파트 매매가가 20억원대인 ‘부자 아파트 단지’지만, 지하주차장이 없다. 그러다보니 경비노동자들의 주된 업무 가운데 하나는 퍼즐처럼 겹겹이 놓여 있는 자동차를 주차하는 일이다. 수시로 입주민들이 나와서 차를 빼달라고 하니, 공식 휴게시간으로 보장돼 있는 점심·저녁 식사 시간 1시간도 제대로 지켜질 리 없다. 주차하다가 비싼 외제차가 긁히기라도 하면 자기 돈으로 물어내야 한다.

강남 한 아파트단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비노동자들은 보통 택배 관리나, 입주민들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게다가 경비노동자들은 입주자대표회의가 계약한 용역회사 소속이라, 항상 계약 갱신을 걱정해야 하는 간접고용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불안정한 고용 구조 탓에 입주민이나 상급자한테 각종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감정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기 일쑤다.

지난 10월31일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경비업무 종사자 안전보건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8~9월 서울 노원구의 아파트 경비원 1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10명에 4명꼴로 “지난 1년간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언어폭력 경험자 중에 46%는 한 달에 1회 이하로, 36%는 한 달에 2~3회 언어폭력을 겪었다고 밝혔다. 11월13일 참여연대가 연 ‘경비노동자 노동인권 관련 긴급좌담회’에서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경비원은 25만여 명으로 현재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제외되는 감시단속노동자로 분류돼 최저임금의 90%를 받고 있지만, 내년부터 최저임금 100% 적용이 이뤄지면 일자리 축소와 인력 감축에 따른 노동 강도 상승 등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 이만수씨의 영결식이 치러졌지만, 아직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건 아니다. 유족과 이씨가 속해 있던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쪽의 첫 번째 요구사항은 ‘사모님’ ㄱ씨의 사과였다. ㄱ씨는 지난 11월10일 저녁 이씨의 빈소가 차려진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조문을 와서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아저씨, 미안해요. 그게 아니었는데 죽을죄를 졌어요.” ㄱ씨는 영정 앞에서 흐느꼈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때늦은 사죄였다. ㄱ씨는 이씨가 3차례 수술을 받으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고인을 한 차례도 찾지 않았다. ㄱ씨는 아내 유씨를 부둥켜안고는 “너무 미안하다”고 통곡했다. 유씨는 “앞으로는 없이 사는 사람 괴롭히지 마세요. 저희 너무 단란한 가족이었고 신랑이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어요. 말 한마디에 한 가정이 무너졌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노조가 있어서 시끄러우니…”

이 밖에 유족과 노조 쪽이 요구했던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 정년 연장 등의 요구사항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씨를 고용했던 ㅎ주식회사는 보상금 7천만원만 받고 향후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지난 11월10일 ㅎ주식회사와 노조 사이에 진행된 교섭은 최종 결렬됐다. 박문순 서울일반노조 사무처장은 “ㅅ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연말 계약이 끝나면 ㅎ주식회사와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ㅎ주식회사도 손을 떼버린 거다.” ㅎ주식회사는 ㅅ아파트 경비노동자 80명을 고용하고 있고, 이 중 68명이 노조 소속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결국 입주자대표회의는 노조가 있어서 시끄러우니 재계약을 안 하고 기존 경비원들을 다 자르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ㄱ씨와 ㅎ주식회사를 상대로 유족이 입은 물질적·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ㅅ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들은 이씨의 빈소나 노제를 찾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모금운동을 벌여 1200만원을 전달했을 뿐이다. ㅅ아파트에는 1924가구가 산다. 단순계산하면 한 집에 6천원꼴로 모금을 한 셈이다. 11월11일 이씨의 노제가 열린 관리사무소 앞길로 비싼 외제차 수십 대가 지나갔다. 하지만 창문을 열거나 차에서 내려 노제를 지켜본 입주민은 한 명도 없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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