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이 가장 존경하는 가수, 고 김현식에게 바치는 찬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라기보다는 최소의 찬사다. 이러한 찬사도 과장만은 아니다. 가요사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른 가수와 가장 멋있는 가수가 한 명이었다면, 그는 김현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타고난 목소리에 뛰어난 작곡 재능, “제임스 딘”(‘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같은 외모, 뒷골목의 “나쁜 경험”(김현식)도 있는 “가요계 최고의 왕펀치”(‘봄여름가을겨울’ 전태관) 그리고 32살 나이에 숨진 요절의 신화까지. 1990년 11월1일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김현식 이전에 김현식이 없었고 김현식 이후에 김현식이 없었다.
육성으로 중계된 꺼져가던 인생
그의 인생엔 방송 출연을 마다하고 음반과 공연을 통해 이룩한 언더그라운드의 신화가 있었고, 폭음과 약물의 드라마가 더해졌다(대마초 사건 그리고 폭음의 결과인 간경화). 심지어 그의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는 과정은 소문을 통해 점차 알려졌을 뿐 아니라 녹음 때마다 조금씩 가라앉고 서서히 거칠어지는 목소리를 통해 육성으로 중계됐다. 1987년 두 번째 대마초 사건 이후에 그의 목소리는 부쩍 변하기 시작했다. 1989년 은 고군분투, 1990년 는 최후 통고 같았다. 숨지기 한 해 전에 발표된 5집 음반에 실린 자작곡 엔 쓸쓸하게 인생을 반추하는 한 사내의 유언 같은 가사(“쓸쓸한 거리에 나 홀로 앉아 바람에 떨리는 소리를 들었지… 꺼질 듯 타오른 거리의 네온을 내 품에 안고서 헤매고 있었어”)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사후에 나온 는 그냥 추신 같았다.
김현식 음악의 절정이었던 3집 (1986) 이후로 앨범마다 변해가는 목소리는 그의 몸이 무너지고 있다는 실물적 증거였다(그러나 그의 목소리엔 놀랍게도 사라진 무언가만큼 새로운 무언가가 채워졌다). 그렇게 의 요절은 비통하긴 했으되 느닷없는 통고는 아니었다. 윤종신의 표현처럼 “막힌 듯한 소리”로 시작되지만 절정에 이르면 고음으로 쭉 뻗어가던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두꺼워지다가 서서히 가라앉아 의 웅얼거리는 탁음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어느 음반이든, 어떤 노래든 김현식의 인장은 듣는 순간에 바로 각인이 될 만큼 또렷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김현식은 후배 가수들이 닮고 싶은 선배였고, 넘고 싶은 산이었다. 그래서 노래를 좀 한다는 (특히 중저음의) 남자 가수들은 한 번씩 그의 노래에 도전했다. 같은 노래는 시나위 출신의 임재범, JK 김동욱 같은 가수들이 꾸준하게 녹음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넘어섰다는 평가에 이르진 못했다. 지난 1월20일 온라인 음원이 공개된 김현식 추모 20주년 음반에 실린 후배 가수들의 창법에서 김현식의 인장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신성우가 부른 는 첫 부분을 무심코 듣다가 김현식의 노래로 착각할 정도다. 홍경민의 을 들으면서 새삼 방송인도 마다하지 않은 대중적인 가수 홍경민의 창법에 새겨진 김현식의 흔적을 발견한다. 바비킴은 을 통해 김현식 음악이 솔(Soul)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증명한다.
1월19일 홍익대 앞 상상마당 브이홀에서 열린 추모 음반 제작발표회에서 후배 가수들은 그에 대한 애정을 쏟아놓았다. 신성우가 “세상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문을 열었고, 추모 음반에서 을 부른 김경호는 “슬픔을 자극하는 소낙비”라고 표현했고, 로 추모 음반에 참여한 이현우는 “노래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도 흠모했던 영웅”이라고 돌이켰다. 이어 생전에 음악적 친구였던 신촌블루스의 엄인호는 “내 생전에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가수”라고 회고했다.
발라드의 원형, 트로트의 흔적, 블루스의 느낌이번 음반에 참여한 린()부터 사랑과 평화()까지 다양한 선후배 가수는 김현식이 남긴 유산의 크기와 존경의 폭을 말해준다. 20주기 추모 음반은 2번에 걸쳐 나오는데 먼저 나온 에는 13명(팀)의 가수가 김현식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불렀고, 2월에 발매될 에는 전인권·박상민·임창정·티맥스 등 15명(팀)이 참여할 예정이다. 에는 고 김현식의 유일한 혈육인 아들 김완제가 와 를 아버지와 ‘함께’ 부르는 노래가 실린다. 내털리 콜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 냇 킹 콜과 (Unforgettable)을 함께 불렀던 것처럼. 1월22일과 23일 밤 11시30분엔 케이블 채널 ‘MBC LIIFE’에서 고 김현식 특집 다큐멘터리 이 1·2부로 나눠 방영된다. 이렇게 나온 음악 CD와 다큐 DVD는 패키지로 묶여서 오프라인으로 발매된다.
김현식은 로커였지만, 록음악만 하지는 않았다. 386세대의 18번으로 남은 같은 노래엔 한국형 발라드의 원형뿐 아니라 트로트의 흔적도 뚜렷하고, 엔 블루스의 느낌이 가득하며, 엔 요즘의 리듬앤드블루스(R&B) 뺨치는 그루브가 넘친다. 트로트의 고전을 블루스로 재해석한 , 이전에 다른 가수들도 불렀지만 김현식의 노래로 남은 에서 보듯이, 그의 노래엔 타인의 노래마저 자신의 오리지널로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엔 현실 참여적인 음악과 대비돼 탈정치적 음악으로 여겨졌던 그의 노래는 사후 20년이 지난 오늘에 좁은 의미의 정치성을 넘어서는 80년대성이 가득하다. 남성적인 직선을 그리며 뻗어가는 초기의 고음에서 대패로 긁은 듯이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갈라지는 후기의 저음까지, 지금 들어도 그의 음악은 80년대의 낭만과 우울을 오롯이 불러온다. 그의 노래는 대개 사랑과 이별에 관한 것이지만, 그에겐 주류 혹은 자본과 체질적으로 타협하지 못하는 반골 기질이 있었다. 그것이 로커 혹은 뮤지션 김현식의 신화를 완성한 최후의 조각이다.
더구나 1980년대 가요의 빛이 김현식이란 초점으로 모아졌다. 김현식보다 3년을 앞서 같은 11월1일에 요절한 천재 유재하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였다. 김종진도 전태관도 마찬가지였다. 전설적 록밴드 사랑과 평화가 그의 음반에 함께했다. 송병준(), 오태호() 같은 당시에 떠오르는 작곡가들이 김현식의 목소리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나중에 이들은 가요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1980년대 가요의 빛
그 후로도 오랫동안, 영화나 소설에 비운의 로커만 나오면 자꾸만 김현식이 모델이 아닐까, 짐작이 나왔다. 감독이나 작가가 직접 밝히지 않아도 이준익 감독의 을 보면서 김현식의 흔적을 떠올리고, 박진표 감독의 처럼 애절한 아니 처절한 사랑을 그리는 영화에서 그의 노래는 절실한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그렇게 김현식의 음악은 고 김광석의 노래와 더불어 대중문화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텍스트가 되었다. 그는 “어둠은 당신의 손수건처럼 말 없이 내 눈물 닦아주”는 생을 살았지만, 세상을 떠난 뒤로 20년 동안 “당신은 그렇게도 멀리서 밤마다 내게 어둠을 내려주”고, “별빛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기가 ‘이별의 종착역’은 아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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