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레조 발레리 교수가 말하는 한국의 아파트 문화
“작은 땅에 사람이 많으니 집을 층층이 쌓아올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아요?”
지난 10월 중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초청으로 한국에 온 프랑스 지리학자 즐레조 발레리 교수(프랑스 마른 라 발레대학교 지리학과 부교수)는 몇년 동안 한국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1999년 서울의 아파트 단지와 도시경관에 대한 지리학적 분석을 주제로 파리4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초기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뻔한 문제를 놓고 논문을 쓴다니 참 순진한 프랑스 여자군’ 하는 심드렁한 반응에 남몰래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 기준으로 볼 때, 아파트로 뒤덮인 한국의 도시경관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1990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세계의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아파트 풍경에 무척 강한 인상을 받았다. 네덜란드나 벨기에처럼 작은 땅에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들 역시 한국과 똑같이 토지부족 문제에 직면했지만, 이 문제를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는 것으로 해결하지는 않았다.”
특히 프랑스에서 아파트는 도시 빈민들이 살아가는 불량주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진 사르셀(sarcelles)시는 1954년 국가 주도로 개발된 첫 도시로서 60~70년대 프랑스의 옛 식민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한 곳이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사르셀시는 종교·사회적 갈등과 폭력의 문제가 심해져 실패한 주거지의 대명사처럼 돼버렸다.
“한국 사람들은 아파트가 급격한 서구화의 결과라고 당연시한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대형 아파트단지야말로 한국 사회가 특유의 근대화 과정을 밟으면서 창출해낸 가장 독창적인 생산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최악의 주거지로 비난받는 사르셀시는 인구 6만명 정도 규모인 데 반해, 한국엔 10만명을 훌쩍 뛰어넘는 거대 단지가 만들어졌다. 서울의 잠실·상계 단지는 각각 10만명이 넘고, 대구의 지산은 30만명, 부산 해운대에는 10만여명이 살고 있다. 이런 대형 단지들이 생겨난 것은 국가 주도형 개발 없이는 불가능하다.
“1972년 도시계획법보다 우선하는 특별법으로 주택건설촉진법을 만들어 고층 아파트 건설을 부추겼고, 분양가 규제를 통해 주택보급률을 높였다. 특히 분양제도는 공익법인이 대규모 주거단지를 저소득층 우대 주공장기임대주택으로 운영하는 프랑스 주택정책과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점이다.”
그는 이와 함께 ‘한국적인’ 주택정책은 사회통제에도 이바지했다고 지적한다. “70년대 프랑스에선 노동자들에게 일렬로 늘어서 있는 형태의 획일적인 주택 단지를 공급했다. 노동자들은 대출금 상환을 위해 계속 일해야 했고 파업도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선 1987년 대투쟁 뒤 노동자들의 중산층 지향화가 시작됐다. 청약저축은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고, 아파트를 얻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과정은 간접적으로 사회가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발레리 교수는 아파트의 이례적인 성공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했다. “도시의 상류층들은 전원주택을 향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 더 이상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차별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아파트를 떠날 가능성이 있다. 요즘에는 서민용 아파트가 도시 외곽에 많이 세워지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아파트의 가치가 떨어지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증거가 아닌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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