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세력간 내부 복잡한 속사정으로 의견 엇갈려… 시민세력 제3신당 논의가 변수 될 수도
민주당의 진로 확정이 늦어지면서 곧 출발할 듯하던 신당행 열차가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다. 신당추진 세력이 애초 세운 신당의 로드맵은 휴짓조각이 된 지 오래다. 개혁당과 통합연대, 신당연대는 신당행 열차에 몸을 실은 지 오래지만 목적지가 같은 민주당 신주류가 미적거리며 올라타지 않은 탓에 발차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창준위 구성 시기 둘러싼 날카로운 대립
문제는 언제까지 기다리느냐다. 신당행 열차의 문을 열어둔 채 일단 개문발차(開門發車) 할 것이냐, 아니면 기왕 늦어졌으니 민주당 신주류가 합류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느냐. 신당추진 세력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내부적으론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려 지구당 창당 등 법적인 신당추진 절차를 서두르자는 쪽과 민주당 신주류의 합류를 기다려 모양새 있게 출발할 때까지 창당준비위 발족을 미루자는 쪽으로 엇갈린다.
이부영·이우재·김부겸·안영근·김영춘 의원 등 한나라당을 탈당한 통합연대의 ‘독수리 5형제’는 애초 ‘8월20일 창당준비위 발족과 9월 정기국회 이전 원내교섭단체 구성’이라는 이정표를 제시했지만 물건너간 지 오래다. 8월20일 시한을 넘긴 다음날 통합연대는 “일단 신당 논의를 시작하자”며 신당추진 세력 연대회의를 제안했다. 이에 따라 8월25일과 28일 통합연대와 개혁당, 신당연대의 대표자들이 연석회의를 했다. 참석자는 통합연대 의원 5명과 개혁당의 김원웅·유시민 의원, 신당연대의 박명광·조성래·조성우 공동대표 등 10명이었고, 민주당 신주류는 불참했다.
두 차례의 연석회의에서 신당창당준비위 구성 시기에 대한 의견이 날카롭게 맞섰다. 신당연대쪽은 “예정대로 9월7일 창당준비위를 띄우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합연대 의원들은 “민주당이 가부간에 결론이 날 테니 기다린 김에 조금만 더 기다리자”며 창당준비위 구성을 늦추자고 제안했다. 개혁당쪽에서 “9월7일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하되 법적 기속력이 없는 이벤트성 행사로 하자”는 중재안을 내놨다.
창당준비위 구성 시기를 놓고 신당추진 세력간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는 내부의 복잡한 속사정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창당준비위를 발족시키려면 법정 지구당 23개 이상을 창당해야 한다. 이렇게 창당준비위가 꾸려지면 정당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행사할 수 있다. 지구당별로 당원을 모집할 수 있고, 후원회도 열 수 있다.
신당연대는 이미 지역별로 창당을 위한 실무적인 준비작업을 끝마쳤다. 도단위는 물론 시·군 단위에서도 준비작업이 마무리돼 곧바로 지구당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준비가 끝났으니 한시라도 빨리 신당연대라는 어정쩡한 형태를 탈피해 법적 지위를 갖춘 정당의 형태로 변신하고픈 것이다. 여기엔 신당 출범 이후 내년 총선 출마 후보 결정과 관련된 민감한 이해관계도 결부돼 있다.
신당이 출범하게 되면 당원 등에 의한 상향식 공천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신당연대쪽으로선 창당준비위를 발족해 법적 지위를 확보한 상황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합류할 경우 경선을 위한 대의원 배분 과정 등에서 좀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민주당의 현역 의원들과 공천을 겨루려면 신당연대라는 애매한 조직형태보다는 법적 지위를 갖춘 신당준비위 형태에서 협상하는 게 유리한 것이다.
공천 놓고 일합을 겨뤄야 하는 사람들
이런 사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전북 남원·순창과 전남 순천지역이다. 남원·순창 지역에선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전북지역 조직 책임자로 활동했던 강동원씨가 신당연대 간판을 내걸고 출마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곳은 민주당 신주류 대표주자 가운데 한명인 이강래 의원의 지역구다. 신당이 발족하면 공천을 위해 일합을 겨뤄야 한다. 순천에서도 지난 총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신택호 변호사가 신당연대쪽으로 출마를 준비 중이다. 이곳 역시 민주당 신주류의 김경재 의원이 버티고 있다. 강동원씨나 신택호씨의 처지에선 하루빨리 창당준비위를 꾸려 민주당 현역 의원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통합연대쪽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은 정기국회 이전 교섭단체를 구성해 모양새 있게 출발하려 했으나 민주당 신주류의 결행이 늦어지면서 희망을 접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역 의원 7명(개혁당 2명 포함)의 초라한 세력으로 첫걸음을 떼느니 민주당 신주류 의원들의 탈당을 좀더 기다려 신당을 위력적으로 띄우자는 쪽이다. 어차피 교섭단체를 구성해 정기국회 때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워졌으니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안영근 의원은 “이젠 제대로 된 신당을 하는 게 중요하다. 민주당 상황이 루비콘강을 건넜으니 의원들이 결단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합연대 의원들 사이에서도 과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는 마지노선에 대해선 조금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에선 10월을 넘기더라도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다른 쪽에선 아무리 미루더라도 9월 말을 넘기면 창당기구를 띄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민·사회단체쪽의 ‘제3신당’ 추진 움직임도 신당창당을 미루자는 논거 가운데 하나다. 김부겸 의원은 “결국 그분들과도 함께 논의해야 하므로 독자신당 창당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시민정치추진모임이 준비하고 있는 9월8일의 1천인 선언은 일단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답답한 정치상황에 대해 시민세력이 뭔가 발언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에서 모색됐다. 선언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박원순·최열·정대화·조희연·손호철·김상희·정강자·이오경숙·이학영·오충일·양길승(녹색병원)·황인성씨 등 시민·사회진영의 대표적 활동가들이 망라돼 있다. 지역의 시민정치 조직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시민정치네트워크와 달리 중앙단위 시민·사회단체의 대표급 인사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다.
시민정치추진모임 1천인 선언의 무게는…
그러나 1천인 선언이 신당추진쪽으로 바로 물꼬를 돌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내부적으로 정치세력화에 초점을 둘 것인지 아니면 정치개혁에 무게를 둘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기 때문이다. 최열씨와 정대화 교수 등은 정치세력화에 적극적이지만 다른 쪽에선 현실정치 참여에 대한 거부감도 많다. 시민 정치세력화 논란의 기저엔 정치적 중립성을 무기로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발휘해온 시민세력이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순간 그 무기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딜레마가 놓여 있다.
제3신당 논의는 기존의 신당추진이 정치권 주변의 이합집산 위주여서 참여하는 사람들과 방식이 기대만큼 새롭지 않다는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시민세력의 제3신당 논의에 새로운 인물들이 참여하고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탄력 있게 추진될 경우 지지부진, 지리멸렬한 신당추진 흐름에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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