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문화제 길거리 방담…정치적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정치화, 그 경험이 사라지진 않을 것
▣ 사회·정리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표지이야기 1부-타오르는 촛불]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길거리 방담이 예정된 5월29일, 마침 정부가 ‘고시’를 해준 덕에 촛불문화제가 열렸던 시청광장은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경희대 영미문학부 이택광 교수, 이렇게 세 명의 대담자는 그리하여 ‘스탠딩’ 방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8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어머니들의 발언을 들으며 촛불문화제 현장의 방담은 시작됐다. 굳이 이들의 연령대를 말하자면, 미류씨와 김작가는 30대 초·중반이고 이택광 교수는 86학번 386 세대다. 먼저 이택광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는 김작가에게 말을 건넸다. 김작가는 연행자가 최초로 나왔던 5월25일 광화문에서 경찰에 연행됐다.
10대, 가부장에 대한 저항
이택광(이하 택광) 김작가는 대학원에서 내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 가장 비정치적이었는데, 잡혀갔단 소리 듣고 깜짝 놀랐어요.
김작가(이하 작가) 토요일에 조용필 콘서트를 보고 집에 갔는데, 인터넷을 보니까 난리가 난 거예요. 그래서 일요일 새벽 5시에 나갔다가 연행됐죠. 성북경찰서에 같이 연행된 5명이 있었는데, 2명은 프리랜서 디자이너였고 1명은 대리운전하는 사람이었어요. 나머지 2명은 대학생이었는데 시위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었고요.
택광 다들 조직도, 집회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었네요.
사회 미류씨는 인권침해 감시단 한다고 했잖아요. 지켜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미류 그러게요. 저도 뒤늦게 현장에 갔는데 그날부터 촛불문화제를 다르게 보게 됐죠.
작가 요즘엔 임시직이 하나 생겼어요. 시민이라는. 졸지에 이렇게 대담에 나오질 않나.
시청광장에는 만장하신 여러분이 촛불을 들고 앉아 있었다. 이날의 풍경은 이전까지와 조금 달랐는데, 사람만 많아진 것이 아니었다. 촛불문화제에서 찾기 힘들었던 깃발이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 문화제 분위기도 조금 ‘전통적’ 집회로 돌아가 있었다.
사회 교수님은 초기에 촛불문화제에 나와보셨다고요?
택광 지금은 집회 분위기가 상당히 정제됐는데 그때는 산만했어요. 10대들이 마이크를 잡으면서 집회가 축제로 바뀌고, 그게 의미가 있었죠. 지금껏 정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치화된 것이 촛불문화제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사회 그래도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지 겨우 100일인데,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요?
미류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표면적으론 이명박 지지, 한나라당 지지로 나타났지만, 저변에는 우리가 통상의 정치라는 패러다임으로 해석할 수 없는 어떤 것이 흐르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게 기존 정치로 수렴되지 않는 것이 이렇게 직접 민주주의 형태로 터져나온 것이죠.
작가 영국 밴드 클래시가 1970년대 펑크 혁명을 이끌면서 ‘희망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희망이 되고 싶었다’고 얘기했는데 그 말이 떠올라요. 현실정치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던 시민사회가 스스로 대안화되고 있는 거죠.
택광 그런 면에서 촛불집회를 격발한 집단이 10대라는 것은 의미심장해요. 기성세대가 기성정치 이상을 상상하지 못할 때, 그 정치의 영향에서 가장 멀리 있던 10대가 저항을 시작한 것이죠. 10대는 입시제도 등으로 사회에서 가장 압박받는 집단이기도 하니까요.
작가 이명박 정부는 가부장제의 마지막 ‘포클레인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로 가부장의 권위가 추락해왔고, 두 번의 정권도 가부장적 권위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흘러왔어요. 그런데 이명박이라는 강력한 가부장이 등장해 상명하복식 명령을 내리니까 거센 반발이 생기죠. 10대가 먼저 나선 것도 그런 징후가 아닐까 싶어요.
대담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연단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거리로 나가기 시작했다. “고시 철회, 협상 무효!” 군중의 외침에 방담자의 목소리가 묻혔다. 김작가가 거리에 나가는 시위대를 보며 “장관이네요”라고 말하자 모두들 “같이 가면서 할까요”라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가다 서다 ‘행진 방담’이 이어졌다.
택광 저기 사람들 보세요. 재미있어하잖아요.
작가 대체로 웃는 표정이죠. 집회가 아니라 축제죠. 페스티벌에 온 기분이에요. 재작년에 처음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인천에서 열렸는데, 처음 인천에 도착했을 때의 소회가 살아나요. 페스티벌이 원래 그런 거잖아요. 어떠한 권위도 없이 관객이 함께 즐기면서, 내가 이 안에 있다는 감동을 느끼는 거죠. 지금이 그래요.
미류 정말 이번 집회에선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전엔 집회에 나가면 줄지어 행진하면서 ‘고시철회, 협상무효’ 억양 없는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는데, 지금 이 사람들 목소리는 정말 끓어요.
택광 그런 면에서 1987년이 떠올라요. 당시에도 학생들이 집에 가려고 해도 시민들은 가지 않았거든요.
작가 (마침 행진 대열에 유모차를 끌고 가는 한 여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저기 유모차는 87년에는 없던 풍경이죠?
택광 그렇죠.
사회 저기도 여성들이 더 많네요.
미류 다들 몰랐지만, 여전히 여성억압적인 한국에서 여성들이 무언가 틈새를 만들고 있었던 거죠. 이를테면 인터넷의 패션 동호회 같은 곳에서도 집회에 나오는데요. 외모 꾸미기에만 신경쓴다고 여겨졌던 여성들이 자신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의 삶을 풀어갈 기획을 하고 있었던 거죠. 언니들이 옷은 어찌나 잘 입는지.(웃음)
작가 ‘연이말’(연예인?! 이제 그들을 말한다)이라고, 최대의 연예인 안티 카페라 할 만한 곳에서도 집회에 나오잖아요.
택광 정치는 사라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 정치화되는 거죠.
사회 참, 운동권스럽게 집회에서 행동하면 ‘프락치다’ 얘기를 듣기도 한다고요?
미류 프락치라는 말이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만드는 키워드가 된 거죠. 프락치가 엉뚱한 곳으로 사람들을 데려가서 연행된다는 얘기가 있으니까요. 저도 얼마 전 행진을 하다가 길에서 ‘민증’(주민등록증)을 까서 실명을 확인하자는 분들을 만나서 당황했죠. 서로를 믿으려면 어쩔 수 없다, 이런 분위기였어요. 거리로 함께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전의경은 민증을 받납해서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까 구분된다는 얘기였어요.
작가 인터넷 실명제가 오프라인으로 옮겨온 거네요.
미류 인권운동가로서는 말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나… 하는데 다행히 수습이 됐지요.
시위대 안의 경계들
한참을 얘기하는 가운데 어느새 시위대의 후미마저 시야에서 사라졌다. 미류씨의 지인이 지나가다 “종로로 간대”라고 전해준다. 다행히 샛길로 질러서 명동 거리로 나갔고 시위대를 찾았다. 그리하여 롯데백화점 앞에서 행진 방담은 이어졌다.
사회 닭장차 투어 아시죠?
택광 자진 연행돼서 경찰서 구경하자는 건데, 불복종이 자발적으로 나온 거죠.
작가 정말 우리 사회의 기술적 진화가 대단해요. 일요일에 사람들이 연행되고 이틀 만에 닭장차 투어가 나오잖아요. 심지어 개인들이 집회를 현장 생중계하고요.
택광 김작가도 잡혀갈 때, 휴대전화 문자로 생중계했잖아요. 지금 잡혀갑니다, 라고.(웃음)
사회 자, 끝으로,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작가 줄줄이 사탕으로 터질 문제가 많잖아요. 의료보험·상수도 민영화에 대운하까지. 이명박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날까지 계속되지 않을까요. 본업에 충실해야 하는데, 큰일이야.
미류 사실 걱정도 있어요. 초기의 촛불문화제에 이주노동자가 선전전을 나오면 너희가 왜 여기에 오느냐, 이런 반응도 있었대요. 이렇게 지금은 시위대 안의 경계가 유동적이고 아슬아슬한 구석도 있는데, 어떻게 경계를 풀어가느냐가 관건이지 않을까요.
택광 한국에 놀이문화가 없는데 촛불문화제가 재미있는 장을 열어주는 구실도 했어요. 이렇게 한번 분출된 에너지는 설사 진압이 되더라도 경험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아요. 언젠가 기억으로 돌아오죠.
작가 이게 수백, 수천 년이 지나면 광화문 한복판에 용이 나타났다, 이런 신화가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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