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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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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간이역에 아버지가 계시네

등록 2006-01-06 00:00 수정 2020-05-03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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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 물건은 아버지의 손때가 많이 묻어 있는 사진기다. 일부분이 파손돼 사라지고 없지만 지금도 덕양역 역사 안에 잘 보관되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받고 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진관을 운영하셨다. 어머니와 같이 계속 운영하시다가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무렵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진관에 손님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저 사진기로 사진을 찍고 암실로 현상을 하러 들어가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 뒤 간이역인 덕양역이 역사를 보수하면서 ‘쉬어가는 장소’를 한구석에 마련하게 됐는데, 그 당시 우리 집을 드나드시던 많은 분들이 사진기를 보고는 전시하면 더 좋지 않겠냐고 추천을 해줘 선뜻 내놓게 됐다. 어머니가 어렵지 않게 허락하신 건 역사가 친정집에서 50m가량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우리 곁에 안 계신 지 상당히 오래됐지만 사진기는 항상 아버지와의 추억을 상기시킨다. 내게는 유독 어린 시절의 사진이 많다. 물론, 모두 아버지가 찍어준 사진이다. 그때 어버지는 약속하셨는데…. 아버지, 제가 벌써 다 커서 지난 2월에 딸을 낳았어요. 아버지가 약속하셨잖아요. “네가 커서 아기를 낳으면 돌사진은 내가 찍어주마”라고요. 기억나세요?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지금도 신발을 끌고 몇 걸음 걸어 동네 간이역에 건너가면 우릴 향해 웃고 계실 아버지를 만날 것만 같다.

김은주 전남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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