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의 잔잔한 흥행 파문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가지 마. 여기 있어. 언제까지나.”
사랑을 시작할 때, 조제는 “언제까지나”라고 말한다. 츠네오의 품 안에서.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조제는 “언제까지나”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일본 영화 (이하 )은 헤어질 것을 알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것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는 사랑에 관한 영화이면서 사람의 숙명에 관한 영화다. 다나베 세이코가 쓴 원작소설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은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장애여성 조제와 청년 츠네오의 사랑
는 장애여성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와 평범한 청년 츠네오(쓰마부키 사토시)의 사랑 이야기다. 두 사람이 만나고 사귀고 헤어지는 이야기로 영화의 대부분이 채워지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 나면 헤어지고 난 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결국 는 인생에 관한 영화다.
모든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고, 사랑은 시간에 부식되기 마련이다. 영화는 사랑이 시작되기도 전, 이별 통고부터 한다. 조제가 좋아하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가 인용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조제는 알지만 피하지 않는다.
조제는 할머니와 단칸방에 살았다. 그곳은 “깊고 깊은 바다 속” 같은 곳이다.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와. 정적만이 흐를 뿐”이다. 그래서 “별로 외롭지”도 않다. 할머니가 주워온 책을 읽는 것이 조제의 유일한 소일거리다. 조제가 죽음 같은 바다 속을 견디는 방식은 ‘다이빙’으로 표현된다. 그는 의자에서 내려올 때, 훌쩍 몸을 던져버리는 다이빙을 한다. 하지만 조제는 봄이 오면 꽃이랑 고양이도 봐야 하는 소녀다. 조제는 어느 날 새벽 산책길에 츠네오를 만난다. 그리고 바다 속을 헤엄쳐 세상 속으로 나온다. 비로소 츠네오의 손을 잡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호랑이’를 보러 갈 용기를 낸다. 호랑이 같은 세상을 대면한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영화는 1년 뒤로 점프한다. “또다시 고독해지는 시간”이다. 조제가 츠네오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은 츠네오와의 이별여행이 된다. 조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수족관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수족관처럼 안온한 츠네오의 가족에 편입되지 못하는 것을 상징한다. 쓸쓸한 시간은 간결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처음 보는 터널의 빛에 감탄하는 조제에게 츠네오는 “운전 중이잖아”라고 퉁명스레 대답한다. 결국 츠네오는 가던 길을 멈춘다. 조제는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한다. 그날 밤 조제는 말한다.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골데골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아.” 그리고 담백한 이별이 이어진다.
조제는 그토록 싫어했던 휠체어를 타고 장을 보고, 자신을 위해 생선을 굽는다.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다”는 표정으로. 영화는 도망치는 츠네오의 어깨도 토닥인다. 는 우리는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고(그것이 신체장애든, 성격장애든, 학벌장애든 무엇이든), 장애를 뛰어넘는 완벽한 사랑이란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츠네오의, 아니 우리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괜찮다고 위무한다. 그것이 사람이라고. 벌써 에 위로받은 관객이 3만3천명을 넘어섰다(12월10일 기준). 10월29일부터 2개관에서 장기 상영하며 이룬 성과다. 의 잔잔한 흥행 파문은 지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12월8일부터는 대구 등 지방 상영을 다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