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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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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민주주의로 가는 길

덴마크·독일·일본의 사례를 통해 본 에너지와 민주주의의 관계…
시민사회 각성이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 갈라
등록 2011-04-08 16:38 수정 2020-05-03 04:26

세 나라가 있다. 원자력발전을 두고 저마다 다른 길을 걸었다. 하나는 일찌감치 원자력발전을 접었고, 다른 하나는 원자력과 이별하는 중이다. 마지막은 줄곧 원자력에 매달리고 있다. 덴마크, 독일, 일본의 이야기다. 셋의 사연은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0여 년 전 중동에서 불어닥친 오일쇼크 바람 속에서 전세계는 대체에너지를 찾아나섰다. 원자력도 유력한 대안 가운데 하나였다. 핵발전은 당시에도 ‘꿈의 자원’이거나 ‘준비된 재앙’이었다. 세 나라에서 모두 정치계와 경제계, 시민사회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공방전이 벌어졌다. 나라마다 다른 힘 관계 속에서 원자력 정책은 저마다의 길로 접어들었다. 과거는 현재를 규정하고, 미래를 설명했다. 지난 3월 원자력이 한 곳에서는 ‘남의 나라 얘기’이고, 누구에게는 ‘깰 수 없는 악몽’이 됐다. 이들의 사례를 보면, 원자력과 친환경적인 신재생에너지는 서로 반비례했다. 세 나라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현재와 미래에 시사점을 던진다.

»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에 따른 방사능 누출 사고는 4살 된 어린이 몸에도 백혈병을 남겼다. TASS/ VLADIMIR SHUBA

»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에 따른 방사능 누출 사고는 4살 된 어린이 몸에도 백혈병을 남겼다. TASS/ VLADIMIR SHUBA

1976년, 덴마크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원자력발전소 15기 착공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에너지정책 76’이라는 정책 보고서에서 1995년까지 20년 동안 에너지 소비량이 50%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수요를 채우려면 원자력발전소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덴마크 전체 에너지 공급량에서 수입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이 88%였다. 오일쇼크로 뛰는 원유 가격은 견디기 힘든 부담이었다. 정부의 논리는 그럴듯했다.

원전 없이 경제성장 달성한 덴마크

같은 해 시민단체인 ‘원자력발전정보조직’(OOA)은 ‘대체에너지 정책(AE76)’ 보고서를 내놓았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답변이었다. 핵심은 ‘원전 없는 에너지 시나리오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덴마크공과대학의 저명한 물리학자인 닐스 마이어 교수를 중심으로 학자 8명이 머리를 맞댄 결과였다. 보고서는 정부 전망과 달리 1995년까지 에너지 수요 증가폭을 37%로 잡았다. 핵을 버리는 대신 에너지 효율화, 재생 가능 에너지, 천연가스 등으로 에너지원을 다양하게 하자는 안을 담았다. 지역열 공급과 열병합발전 등 소규모 에너지 기술을 널리 도입하자는 내용도 있었다.

원자력발전을 놓고 시민사회와 정부·업계의 사이에 분명한 전선이 그어졌다. 당시 에르링 옌센 경제장관은 “에너지 수요를 늘리지 않고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력회사들도 정부의 목소리를 거들었다. 그 뒤 10년은 시민사회와 정부·업계 사이 공방의 연속이었다. 1979년 3월 미국 스리마일섬 핵사고가 발생한 뒤 수도 코펜하겐에서는 2만5천 명이 반핵 시위를 벌였다. 시민사회의 저항이 거셀 때마다 정부는 원자력발전소 신축 계획을 미루며 한 발짝씩 빠졌다. 지루한 공방은 1985년에 마무리됐다. 덴마크 정계에서 원자력발전소에 회의론이 번지자, 의회가 공식적으로 원자력발전소 신축 계획을 포기했다.

그 뒤 덴마크의 경제는 어떻게 됐을까. 예센 장관이 말한 ‘불가능’은 ‘현실’이 됐다. 1995년까지 에너지 수요는 18%만 늘었을 뿐이고, 경제는 70% 성장했다. 1995년에 이르면, 덴마크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3331달러로 전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았다. 원자력이 없어도 전력은 공급됐고, 경제는 성장했다. 1990년대 이후에도 선순환은 이어졌다. 1990~2006년 경제는 40% 성장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4% 줄었다.

» 4개국의 에너지원 변화

» 4개국의 에너지원 변화

원자력이 비운 자리는 신재생에너지가 채워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통계를 보면, 2009년 덴마크는 전체 에너지 소비 가운데 재생에너지가 18.0%를 채우고 있다. ‘경제성장’과 ‘환경 친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셈이었다. 한국 정부도 부럽긴 했나 보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지난해 말에 내놓은 보고서에서 “(덴마크가) 높은 경제성장률의 원동력으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꾸준하고 집중적인 투자를 했다. 이를 통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환경을 보호하는 효과를 동시에 가져왔다”고 풀이했다.

원자력 정책에서 ‘U턴’한 독일

독일은 원자력 정책에서 ‘유턴’을 한 경우였다. 독일 정부는 전통적으로 원자력발전에 우호적이었다. 1969년 최초로 실용적인 목적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한 이후, 원자력발전은 국가 전력 생산의 30% 이상을 떠맡았다. 변화의 조짐은 1998년에 나타났다. ‘원자력발전소 폐쇄’를 공약으로 내세운 독일 녹색당이 사민당과 함께 연합정부를 구성했다. 원자력발전 중지가 정치적 의제로 부상했다. 새 의제는 두 당 사이에서 균열을 남기기 시작했다.

녹색당은 원자력발전소를 바로 폐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전력 예비율이 40%에 이르기 때문에 30% 정도의 전기를 공급하는 원전은 바로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 근거였다. 사민당의 생각은 달랐다. 원전을 새로 짓지는 않는 대신, 이미 만들어진 발전소는 10년 이상에 걸쳐 단계적으로 닫을 계획이었다. 원전을 폐쇄하면 해체 비용이 많이 들고, 실업자가 늘어난다는 근거가 있었다.

사민당의 방침이 재계 쪽으로 한 걸음씩 옮겨가자, 베를린 등에서 대규모 반핵 시위가 벌여졌다. 논쟁이 타오르자 사민당-녹색당 연정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2000년 6월 극적인 타협이 이뤄졌다. 2002년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탈원자력법’에 따라, 2022년까지 전국 20기의 모든 원자력발전소는 폐쇄될 예정이다.

‘탈원전’ 일정은 올해 들어 다시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터지자 7개 원전 가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의 배경에도 독일 녹색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난 3월 말 독일 서남부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은 바람을 타고 있었다. 선거를 앞둔 메르켈 총리는 녹색당을 견제하려고 원전 작동을 멈추는 강수를 뒀다.

독일이 원자력발전을 폐기하는 쪽으로 돌아서자, 에너지 정책의 중심축도 신재생에너지로 옮아갔다. 임성진 전주대 교수(정치학)는 “독일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새롭게 바뀌는 데는, 원자력 포기가 기폭제 구실을 했다”고 설명했다. 1990년 전체 전력 생산 가운데 1.5% 정도만을 차지하던 재생에너지 비중은 2009년에는 9.1%까지 올랐다. 2020년까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시민사회 ‘침묵’ 속 원전 올인한 일본

일본은 원자력발전에 ‘한눈팔지 않고’ 달려왔다. 일본은 1966년 7월 처음으로 상업용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한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지은 나라다. 일본에는 현재 55개 원자력발전소가 운행 중이고, 14개 발전소가 더 만들어질 예정이다. 원전이 쉽게 지어진 이유는 독일이나 덴마크에 견줘 상대적으로 ‘조용한’ 시민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체르노빌이나 스리마일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일본 사회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일본인들의 ‘침묵’은 1995년 생긴 고속증식로 ‘몬주’의 냉각제 유출 사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계 최초의 고속증식로로 촉망받던 몬주는 1991년 시험 운행에 나선 지 4년 만에 전면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냉각제로 쓰는 나트륨이 유출돼 안전 문제가 대두됐다.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한 동북 지역 3개 현(후쿠시마·니가타·후쿠이) 지사들은 당시 내각총리 대신에게 ‘금후 원자력 정책 진행에 관한 제언’이라는 글을 보냈다. 글에는 핵발전소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국책상의 제반 문제에 대해 지역 주민들의 이해와 협력을 얻을 수 없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 지난 3월26일 독일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원자력발전소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PAWEL KOPCZYNSKI

» 지난 3월26일 독일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원자력발전소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PAWEL KOPCZYNSKI

일본의 저명한 반핵운동가인 다카기 진자부로는 훗날 “‘국책’이기 때문에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원전을 수용했던 지역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첫 사례”라며 “획기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전에는 ‘국가 정책’이라는 이유로 행정 당국에 대해 지자체들이 반대하지 않았고, 대신 이러저러한 예산을 좀더 요구하는 정도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원자력발전소 안전 문제가 터질 때마다 시민사회가 벌집 쑤신 듯 일어났던 덴마크나 독일과 비교하면, 일본의 차이점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에서 주민 투표를 통해 원전 건설을 거부한 때도 1996년이 처음이었다. 니가타현 마키 지역 주민들의 결정이었다.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과학사학)는 “건설 토호와 정치권이 긴밀하게 담합한 상태인 토건국가 일본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다. 여기에 원자력발전소가 오래 지어진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투자에 가장 인색한 한국

일본에서는 원자력발전 분야가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자 신재생에너지는 발붙일 곳이 줄었다. IEA의 통계를 보면, 일본의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3.5%에서 2009년에는 3.2%로 오히려 줄었다. 그 사이 원자력 발전 비중은 12.0%에서 15.4%로 늘었다.

한국의 상황도 일본과 큰 차이가 없다. 1978년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인 고리 1호기가 준공된 뒤, 원자력발전소는 일사천리로 지어졌다. IEA가 내놓은 2010년 ‘주요 에너지 통계’를 보면, 한국은 2008년 시설 용량이 17.7GW로 세계 6번째 원전 대국이다. 시민사회가 원자력 문제에 조용한 점도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발전소 입지 선정을 두고 주민 투표를 거친 사례가 없다. 따라서 주민들이 원자력발전소 유치를 투표로 거부한 사례도 지금껏 없었다. 일방통행식 행정이었다. 핵시설과 관련한 주민들의 저항은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 반대 운동에 한정됐다. 강윤재 가톨릭대 연구교수(과학사회학)는 “우리 사회는 핵발전을 핵 주권이나 핵 자주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심지어 진보 진영도 경제성장·전력공급을 위해 원자력발전소는 용인하는 편이었다”고 풀이했다.

이런 토양 속에서 국가 에너지 정책은 원자력으로 치우쳤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에 나온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을 보면 정부의 인식을 읽을 수 있다.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핵심은 원자력에너지 비중을 14.9%에서 2030년까지 27.8%로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곁가지로 신재생에너지의 역할도 2.4%에서 11%까지 끌어올린다는 내용이었지만, 몸통은 단연 ‘원자력’이었다. 자료에 붙은 설명을 보면, “100만kW의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전은 서울 월드컵경기장 1개의 면적만 필요하지만, 태양광은 경기장 151개, 풍력은 경기장 51개의 면적이 필요하다”는 엉뚱한 비유를 동원했다. 이런 풍토에서 재생에너지가 발붙일 곳은 적었다. IEA의 자료를 보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1990년 1.1%에서 2009년 0.7%로 오히려 감소했다.

한국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했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2015년까지 정부 예산 7조원을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식경제부는 “태양광을 제2의 반도체사업으로, 풍력을 제2의 조선업으로 삼아 대규모 투자를 통해 2015년까지 세계 제5대 신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전망은 밝지 않다. 토양이 워낙 척박해서다. 지난해 12월 말 에너지관리공단은 ‘신재생에너지백서’라는 609쪽짜리 보고서를 냈다. 전세계 신재생에너지 현황을 담은 보고서는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공단에서도 따로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다. 내용을 보면,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참담한 투자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을 중심으로 18개 국가의 신재생에너지 투자 현황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한국은 2009년 2천만달러를 써서 재생에너지 투자에 가장 인색한 나라였다. 15~17위를 기록한 일본(8억달러), 인도네시아(3억5400만달러), 아르헨티나(8천만달러)에도 크게 못 미쳤다. 투자 1~3위인 중국(346억달러), 미국(186억달러), 영국(112억달러)과 비교하기는 무색할 뿐이다.

에너지 정책은 민주주의와 직결된 사안

민주주의와 에너지 사이의 함수관계에 대해 이필렬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에너지 수급 시스템은 민주주의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에너지를 화석연료나 원자력으로부터 얻겠다는 것은 에너지를 중앙집중적인 거대 기술 시스템과 석유 메이저, 거대 재벌의 손에 맡기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이 장악한 에너지 권력을 일반인들의 손에 돌려줄 때 민주주의는 한 발짝 더 전진할 것이다.” 지난 3월28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58차 원자력위원회에서는 현재의 원자력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결정했다.



급제동 걸린 ‘핵에너지의 르네상스’
원자력 산업 사라질 가능성 낮아


“원자력발전은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지구의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이다.”
그린피스의 공동 설립자인 패트릭 무어가 2005년 미국 의회에 출석해서 한 말이었다. 반핵 진영의 선봉에 섰던 무어의 ‘개종’은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특히 원자력발전 업계는 그의 개종을 두 손 들고 환영했다. 그의 ‘어록’은 원자력 안전성을 입증하는 유력한 논거가 됐다. 국내의 한 언론은 그의 말을 담아 ‘그린피스의 실패’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원자력 업계에서 패트릭 무어만큼 자주 인용하는 인사가 또 있다. 지구 전체를 거대한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Gaia) 이론’의 창시자 제임스 러브록이다. 그도 2004년 “원자력발전만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는 공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원자력발전만이 방대한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는 동시에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적잖은 환경론자들이 무어와 러브록의 뒤에 줄을 섰다. 러브록 교수가 회원인 것으로 알려진 ‘원자력발전을 위한 환경보호론자’ 같은 단체는 아직도 누리집(www.ecolo.org)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러브록의 신념과 맞닿아 있다. 원자력발전이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악’이라는 믿음이었다.
특히 2000년대 중반에 그런 경향이 팽배했다. 주목할 만한 변화도 있었다. 2005년 핀란드는 원자력발전소 올킬루오토 3호기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핀란드에선 30년 만에, 유럽에서도 15년 만에 짓는 원전이었다. 체르노빌 원전의 악몽은 끝나는 듯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2006년 ‘세계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핵에너지가 기후변화 대응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서서히 ‘핵에너지의 르네상스’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부활의 계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핀란드의 올킬루오토 3호기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건설 비용도 처음 계획치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면서, 완공 시점이 2013년 이후로 늦춰지고 있다. 환경운동 진영은 여전히 원자력발전에 회의적이다. 패트릭 무어도 그린피스의 견해를 대변한 것이 아니었다. 그린피스는 원자력발전에 지금도 반대하고 있다. 그의 말은 순수하게 ‘개인적’이었다. 특히 이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문제로 인해 욱일승천하던 세계 원자력 산업에 다시 급제동이 걸리게 됐다.
안병옥 기후행동연구소 소장은 “일부에서 원자력발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하나의 위기를 벗어나려고 다른 위기를 불러들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진희 동국대 교수(과학사학)도 “원자력발전도 초창기에는 경제성이 없어서 정부에서 보조를 했던 것처럼, 신재생에너지에 대해서도 정부 보조를 통해 기술을 개발해서 상업화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인류를 위해 가장 현명한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산업이 곧 사라질 가능성은 낮다. 영국의 주간지 는 “잘못됐을 때 엄청난 문젯거리를 만들지만, 결국 원자력발전은 어느 정도 주변부에라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류의 ‘사고뭉치’가 주변부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는, 전세계의 정치·시민 사회가 결정할 몫으로 남았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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