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불법 공유한 이용자들에게 합의금 받아내는 것이 저작권 문제의 해결책인가
▣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네오폴더, 다이하드, 엔디스크, 폴더플러스…. 자료를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웹하드 사이트들의 이름이다. 이 이름들이 낯설지 않다면? 당신도 범법자일 확률이 높다. 언제 어디서 경찰서로부터, 혹은 특정 법무법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올지 모른다.
대학 졸업을 앞둔 김교석(26)씨는 지난 4월10일 일산 고양경찰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가 접수됐습니다.” 어리둥절한 김씨, 기억을 되새겼다. 얼마 전 6년간 사용한 컴퓨터를 새 컴퓨터로 바꾸면서 자료 백업을 위해 ‘내문서’ 폴더의 자료를 엔디스크에 올려둔 일이 생각났다. 문서 자료만 있는 줄 알았던 그 폴더에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시디스페이스’라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아뿔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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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정진호(25)씨도 지난 4월30일 고양경찰서의 전화를 받았다. ㄴ 웹편집 소프트웨어를 다이하드에 올려둬 고소당했다. 사실 그는 웹하드 사이트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남들이 올려둔 영화 등을 내려받는 데 필요한 포인트를 모으려고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자료를 틈나는 대로 올려두었다. 친구들 모두 그렇게 일상적으로 웹하드 사이트를 이용한다. 그런데 고소라니! 정씨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다음날 바로 경찰서에 출두했다.
‘대학생 90만원, 일반인 100만원’에 합의
두 사람 모두 ‘개발자에게 저작권이 있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저작권자 허락이나 동의 없이 배포’(저작권법 97조 5항)한 혐의였다. 인정했다. 하지만 억울했다. 재수없게 나만 걸렸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다. “수사권자가 법무법인이고, 경찰은 심부름꾼 같았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김씨의 경우를 보자. 정해진 날짜에 경찰서에 나갔다. 형식적인 절차를 밟아 조서를 작성했다. 경찰은 법무법인이 제출한 ‘다운로드 현장 스크린 샷’을 증거물로 제시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경찰은 대뜸 ㅅ법무법인 전화번호를 건넸다. ‘시디스페이스’ 개발자인 스페이스 인터내셔널이 권리를 위임한 법무법인이다. 이어진 경찰의 설명. “초범이니까 검찰에 기소되면 대략 50만원의 벌금형을 받을 거다. 형사처벌을 받는 건데, 이후 고소한 저작권자가 민사소송도 제기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피하려면 합의를 보는 것이 좋다.” 김씨는 “무슨 복덕방처럼 합의를 유도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예 경찰로부터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다. “내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합의를 하면 어떻게 되고 합의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경찰은 그저 “누가 고소한 줄 아느냐”라고 정씨에게 물은 뒤 고소한 ㅇ컨설팅 회사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건넸을 뿐이다.
정씨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회사에 전화를 했다. “대학생 90만원, 일반인 100만원”이라는 사무적인 ‘안내’를 들었다. “빨간 줄이 그일까봐 무서웠다”는 정씨는 90만원에 합의했다. 알려준 계좌에 입금하자, ‘고소가 취하됐다’는 이메일 한 통이 날아들며 상황은 종결됐다. 김씨도 ㅅ법무법인에서 비슷한 안내를 들었다. “초·중고생 60만원, 대학생 80만원, 일반인은 100만원. 일괄 합의금입니다.” 벌금을 내고 ‘전과 기록’을 남기느냐 아니면 돈 몇십만원으로 합의하느냐, 고민하던 김씨는 “법무법인 배만 불려주는 것 같아” 그냥 법적 절차를 밟기로 했다.
온라인상의 저작권법 위반자 적발과 처벌은 경찰과 저작권자 대리인 사이에 철저히 분업화돼 있다. ㅅ법무법인은 상시적으로 위반자 명단을 경찰에 넘긴다. 5월28일 ㅅ법무법인 홈페이지 대문에는 ‘5월 3주 고소 리스트’ ‘5월 4주 고소 리스트’라는 제목의 피고소인 명단이 인터넷 아이디로 죽 나열돼 있었다. 이 법무법인은 4월 한 달에만 300여 건, 5월에는 180여 건의 적발 사례를 경찰에 넘겼다. 이렇게 고소가 이뤄지면 경찰은 이들을 출두시켜 “합의냐, 벌금이냐”를 묻는다. 고소당한 이들은 경찰의 ‘안내’에 따라 법무법인에 연락하고, 법인이 정한 합의금을 문다.
“고소 기준은 없고, 그냥 운이다”
고소될지 안 될지는 운이다. 파일 공유 사이트로 가장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프루나’는 하루 평균 방문자 수가 70만 명이다. 이 다음으로 ‘클럽박스’는 67만 명, ‘파일구리’는 54만 명 등이다(정보통신부·인터넷진흥연구원 공동조사, 2006년). 이 사이트들은 파일 업로드·다운로드 외에 별다른 기능이 없기 때문에 이용자 대부분이 불법적인 업로드·다운로드를 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 주변의 ‘김대리’와 ‘박부장’과 ‘이양’과 ‘최군’들이 미국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을 내려받는 사이트가 이곳들이다. 몇몇 저작권자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아 위반자를 적발하는 일을 하는 ㅇ컨설팅의 한 이사는 “하루에 적어도 200건, 1주일에 1천여 건은 적발하는데 다 고소하지는 않고 계도 차원에서 절반 정도만 고소한다”고 말했다. “고소 기준은 없고, 그냥 운이다”라고 덧붙였다.
적발 방법은 간단하다. 여러 파일공유 사이트들을 순례하며 저작권을 위임받은 해당 프로그램명을 검색하는 것. ’시디스페이스’, ’나모 웹에디터’ 등을 검색하면 해당 프로그램이 쭉 검색된다. 이를 다운로드해 다운이 실행되면 다운되는 상황을 프린트 스크린샷을 통해 저장하고, 아이디를 기록한다. 이를 경찰에 넘기면 경찰이 해당 아이디 소유자에게 전화를 한다.
경찰은 저작권 침해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김선겸 고양경찰서 사이버수사팀장은 “고소권자가 직접 고소하지 않으면 어차피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경찰이 직접 나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는 6월 말이면 개정된 저작권법에 따라 제3자가 위반자를 고소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파파라치들이 기승을 부릴 수 있고, 인터넷상의 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법 시행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이런 ‘묻지마 고소’가 저작권 보호에 얼마나 효용이 있을까? 최근 출판물을 웹사이트에 올려 고소당한 고교생 진달구(가명·17)군은 “아무리 법을 어겼다고 해도, 경고 한 번 없이 마구 고소하는 건 부당하다. 게다가 누군 걸리고 누군 안 걸린다. 짜증난다. 순전히 돈 벌려고 그러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남길우 한국정보문화원 팀장은 “적발 방법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해도, 특정 법무법인이 ‘저작권을 위반했으나 합의 보면 고소 안 한다’면서 쉽게 합의금을 챙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 보호는 뒷전이라는 얘기이다. 남 팀장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교육해보면, 저작권 문제뿐만 아니라 사이버상에서 자신이 저지르는 무수한 범죄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낮다”고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본은 중학교 교과서에 온라인에서의 저작권 침해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으나, 한국은 아직 교과과정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파일 공유 사이트들 업로드 조장”
파일 공유 사이트들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심재석 스페이스 인터내셔널 사장은 “피투피나 웹하드 같은 사이트는 남들이 만들어놓은 콘텐츠들을 올리고 내리는 공간만 제공하고 돈을 버는, 한마디로 남의 걸로 장사하는 공간”이라며 “지금처럼 버젓이 운용하게 내버려두는 법체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영상산업협회 김의수 팀장은 “이런 사이트들은 업로드를 많이 하면 포인트를 주는 방식으로 업로드를 조장하는 측면이 크다”면서 “저작권 침해를 막으려면 이런 환경을 조성한 인터넷 사업자들의 책임을 묻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힘들여 개발한 소프트웨어나 공들여 만든 영화들이 ‘공짜 공유’로 휴짓조각이 되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급속도로 퍼진 인터넷상의 콘텐츠 공유 문화와 기술적으로 진화한 파일 공유 사이트를 내버려둔 채 몇몇 이용자들만 주먹구구식으로 처벌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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