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대원들과 함께 돌아본 낮과 밤… 그곳에선 무엇이 만들어지고 어떤 사람들이 사는가
| 7월1일 청계 고가도로가 헐리면서 카메라의 눈들이 일제히 청계천을 향하고 있다. 청계천, 그곳에선 무엇이 만들어지고, 어떤 것이 팔리며,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가. 청계천 탐사대원들과 함께 청계천의 낮과 밤을 돌아보았다. |
요즘 청계로에 나가면 사진기를 든 젊은이들을 자주 만난다. 7월1일이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청계고가의 마지막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혼자서 또는 삼삼오오 떼를 지어 곳곳에서 셔터를 눌러댄다. 그동안 별 관심을 받지 못했던 콘크리트 고가를 비롯해 주변 인쇄공장, 공구가게, 헌책방, 주단상점, 노점상들이 기꺼이 모델이 된다. 30여년 동안 서울 강북 도심 교통의 대동맥이었던 청계고가는 최후의 숨을 몰아쉬면서도 마지막 서비스를 하는 셈이다. 철거 직전 청계고가 일대는 유효기간이 끝나갈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이상한 ‘문화상품’이 돼버렸다.

동평화상가의 썰렁한 가게들
청계천. 이곳에서 무엇이 만들어지고 어떤 것이 팔리고 무얼 하는 사람들이 살기에 카메라가 몰려드는가. 건축전문인들로 구성된 도시건축네트워크, 도시를 주제로 작업해온 작가그룹 플라잉시티, 그리고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 세곳의 활동가들이 “청계천을 제대로 들여다보자”며 뭉쳤다. 아니, ‘제대로 보기’가 목표라고 하면 맞지 않겠다. 이들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자’고 외치니까.
6월15일 새벽 2시30분. 잠을 못자 핏발이 선 눈동자 14개가 동평화시장 앞에서 멈췄다. 플라잉시티의 전용석, 웹디자이너 박찬, 문화연대 김태현 간사, 문화비평가 류제홍, 도시건축네트워크 활동가 심한별씨 등 ‘청계천 탐사대원’들은 이날밤 벌써 3시간 넘게 동대문 일대를 헤집으며 다닌 뒤였다. 저녁 7시부터 문을 열어 그다음날 오후 5시에야 문을 닫는 동평화상가는 한창 붐벼야 할 시간인데도 한적했다. “불황이라서 영 재미없어요.” 썰렁한 가게를 의무방어전 차원에서 지키고 있던 상인들은 피곤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동평화시장 ‘4층 대표’인 박춘선씨는 걱정을 털어놓았다. “한창 때는 6천만~7천만원 하던 권리금이 요즘엔 1천만원도 안 합니다. 철거 공사 들어가면 더욱 심해질 텐데 큰일이에요.” 탐사대는 박씨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언제 이곳에 왔는지, 옷은 어떻게 만들어 파는지, 몇 시간 일하는지, 같은 층에서도 목에 따라 임대료가 다른지 등 집요한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던 박씨는 끝내 “내일 청계천 일대 상인들의 집회 때 마이크 잡고 읽을 글”이라며 볼펜으로 눌러쓴 연설문을 미리 읽어봐달라고 내밀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도매상들이 단골인 동평화시장과 달리 이어 들른 청평화시장은 주변상인들이 물건을 떼가는 도매시장이다. 동평화시장이 중년 이상의 연령층을 위한 옷이 많다면 청평화시장은 요즘 유행에 맞는 옷들이 진열대를 메우고 있다. 새벽 5시 이른 시각인데도 자신의 가게에서 팔 옷들을 고르기 위해 몰려든 화장 곱게 한 젊은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새옷이 가득 든 보따리를 안고 모닝커피를 마시며 층계참에서 일행을 기다리던 김아무개(32)씨는 “시간대별로 같은 옷이라도 값이 달라지고 가게마다 가격이 다 달라 꼼꼼히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동대문 주변 시장들은 옷가게라고 하더라도 영업시간이 제각각 다르다. 본래 도매상들을 위해 새벽 4시에 열었던 가게들은 통금시간 해제 뒤 서로 경쟁을 벌이며 조금씩 개점시간을 앞당기다 결국엔 그전날 저녁에 문을 여는 곳이 등장했다. 다같이 젊은 여성 의류를 취급하지만 청평화시장은 새벽 5시에 개점하는 반면 아트플라자는 전날 7시부터 문을 연다. 탐사대원들은 북적대는 손님들 사이에 끼어 상인들과 인터뷰를 하지 못하고 다음날을 기약하고 나왔다. 시장 뒤편에서 올갱이 해장국으로 아침을 때우고 오후에 만날 약속을 다시 정했다.

황학동을 움직이는 에너지
오후 4시. 주말엔 황학동이 인기다. 청계천 7가 벼룩시장 좌판이 모여 있는 길목에 섰다. 명품 브랜드 중고 핸드백부터 ‘몰카’ 포르노 비디오테이프까지 이곳엔 없는 게 없다. 길 한 켜 뒤쪽으론 중고가전 상가가 몰려 있다. 가게엔 같은 채널로 맞춰 놓은 수십개의 텔레비전에선 수십개의 야구방망이가 동시에 수십번 스윙을 때린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도 혹시 황학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 아닐까. 이것이 황학동을 움직이는 에너지인가, 호기심이 피어난다. 1950년대에 나온 일본제 철날개 선풍기, 떼구르르 손가락으로 다이얼을 돌려야 하는 구식 전화기, 톱니바퀴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시계판 등 ‘골동’ 가전기기가 빼곡한 어떤 상점은 들어서면 폭은 50㎝에, 길이는 저 깊숙히 3m쯤 되는 이상한 공간에 틀어앉았다. 서울 올라와 식혜장사, 닭장사를 전전하다 황학동에서 10여년째 터를 잡고 있는 골동품가게 ‘곡성당’ 주인 김광자씨는 민예품 붐에 힘입어 크게 한몫 본 경우다. 어수룩한 고향사람들에게 ’고무 다라이’를 한아름씩 안겨주고 그 대가로 망태·함지박·촛대 같은 쏠쏠한 물건을 맞바꿔 재미를 본 골동품상들이 80년대 장안평으로 반강제 이주하면서 그 빈자리를 김씨가 채울 수 있었다. 그는 나무로 만든 함지박을 불로 그을려 옛스런 느낌을 주도록 가공해서 이를 수천개씩 팔아 밑천을 마련했다. 김씨가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것이 시숙의 처형과의 인연 때문이었던 것처럼 황학동 일대 골동품 가게는 김씨의 친·인척들이 모두 꽉 잡고 있을 정도다.

다음 답사지는 삼일아파트. 1990년대 들어 재개발 시공사로 나선 동아건설이 외환위기로 파탄을 맞으면서 대신 롯데건설이 맡게 된 이곳엔 이미 상당수의 아파트들이 허물어졌다. 1969년 청계천 슬럼들이 고가에서 안보이도록 가려주는 ‘병풍용’으로 지어졌다던 삼일아파트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누더기 콘크리트 더미로 남아 있다. 가난한 도심 노인들의 쉼터로 쓰였을 철골 캐비넷 구조의 단칸 ‘노인정’이 폐물로 버려져 있고, 주민들이 내다버린 가구와 쓰레기가 쌓여 있다. 삼일아파트 앞 벼룩시장에 잇대어 서 있는 포장마차에선 곱창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이들로 가득찼다. 갑작스레 쥐가 튀어나와도 놀라지 말자고 다짐하며 삼일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연료로 연탄에 의지했던 데다 30여년 전에 지어진 아파트라서 그런지 내부공간이 지금과 차이가 많이 났다. 방과 거실 부분은 바닥을 20㎝ 가량 높게 쌓아 출입구와 바닥을 차이나게 만들었다. 안방에선 부엌과 통하는 다락 광이 나 있고, 안방과 사랑방 사이엔 들창을 뚫어 서로 이어지도록 했다. 이름만 아파트라고 할 수 있지, 요즘 지어지는 아파트와 비교하면 내부구조는 오히려 옛날 한옥과 비슷하였다.
삼일아파트의 ‘할머니 친구’

황학동만 해도 십여 차례 다녀갔던 열혈 탐사대원 심한별씨는 이곳에 ‘할머니 친구’를 뒀다. 한번 볼일 볼 때마다 100원씩 내야 하는 유료 화장실을 관리하는 할머니다. 심씨가 갈 때마다 “왜 아직 머리를 안 잘랐냐”며 치렁치렁 늘어진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것으로 반가움을 표하는 분이다. 아직도 삼일아파트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심씨가 먼저 묻지 않아도 “이곳이 재개발되면 좁은 임대아파트 안 가고 널찍한 딸네집으로 이사갈 것”이라고 몇번씩 힘주어 말하곤 했었다. 화장실 이용료를 챙기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할머니가 재개발 뒤 어디로 갈 것인지, 여전히 심씨는 헷갈린다.
청계천 탐사대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단 많이 걷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일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다. 류제홍씨는 “인공적인 도시개편을 앞세우지 말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대화’는 사진이나 녹음, 녹화보다 더 훌륭한 탐사기법이 된다.
지난 5월초 탐사대가 꾸려지고 난 뒤 10여 차례 청계천 일대를 탐사하면서 이들은 무엇보다도 청계천 주변에서 꿈틀대는 내부의 동력에 반했다. “처음 가본 금속공장에서 굉장히 놀랐다. 철사를 가져다가 기계로 동그랗게 말아 손작업으로 열처리를 해서 스프링을 만들더라. 메달 만드는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동판을 가져다가 틀을 만들고 상감 채색해 유럽 등으로 수출한다고 했다. 부품으로 꽉찬 공장은 공간의 낭비가 전혀 없이 밀집과 집적 그 자체였다.”
‘청계천 탐사대’는 시민들이 직접 사진 취재 과정에 참여해 청계천 곳곳을 찍고 그것을 작품으로 전시할 수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탐사대가 18~24일 세운상가 앞에서 일주일 동안 부스를 차려놓고 시민들과 함께 찍어온 사진들이 걸린다. 온라인상에서도 전시에 참여할 수 있다(www.cgpower.net). 7월14~20일 서울 세운상가 5층 중앙홀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전시회에선 “그동안 서울시가 복원계획을 추진하면서 일방적인 협상의 대상이었을 뿐 대화의 테이블에서 초대받지 못했던” 청계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탐사대의 손끝에 잡힌 청계천의 속살은 그동안 차창 밖으로 흘끗 내다봤던 청계천의 외피와 얼마나 다른가. ‘청계천의 힘’전은 말해줄 것이다.
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스카이라이프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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