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size="3" color="#a00000">카드대금 무서워 사채에 발 들여놓는 사람들에게 주는 조성목씨의 조언</font>
“그러니까, 결국 빨리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려라(?)는 얘기네요.” “맞아요. 저도 그걸 생각해보긴 했는데, 너무 제목이 튀어서….” 묻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무릎을 탁 치며 맞받았다. 신용불량자가 되라고, 그것도 공무원이 외친다면 파문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다시 바꾼 책 제목이 (조성목 지음·도서출판 무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돈! 그 달콤한 유혹’이란 말이 경구처럼 눈에 들어온다. 달콤한 유혹은 바로 ‘사채’다.
사금융피해신고센터에 걸려오는 전화들
‘당일 대출 싼%’, ‘연체 결제대납 최고 싼%’, ‘5일 내 갚으면 무이자’…. 출근길 전봇대, 길가의 생활정보지, 차에 꽂힌 사채 스티커, 신문 생활광고면, 전자우편함에 쌓인 대출광고까지 사채의 유혹은 흘러넘친다. 그러나 보통 연 120% 이상이고, 연 360%까지 받는 ‘사채의 끝’은 뻔하다. “발등의 불부터 끄고 보자는 마음으로 고리사채를 빌려쓰지 말라는 겁니다. 왜,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사채가 무섭다는 것을)배우려드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신용불량자 등록이 무서워 사채로 달려가고 있어요. 차라리 빨리 신용불량자로 걸리는 게 낫습니다. 빚이 더 큰 빚을 부르는 고리를 끊어야 갱생을 도모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갚지도 못할 고리사채를 끌어쓴 뒤 돌려막기를 계속하다 신용불량자란 신세를 끝내 피하지 못한 채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람들을 너무 많이 겪은 탓일까. 책을 낸 금융감독원(금감원) 조성목 비제도금융조사팀장은 안타깝다는 듯 연신 혀를 끌끌 찼다. 그의 처방은 간단하다. 도마뱀이 제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듯 ‘과감한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지난해 4월 금감원에 설치된 사금융피해신고센터(02-3786-8655∼8)에는 하루에도 몇십건씩 사채에 시달리는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사채를 끌어썼다가 폭행·협박·납치·감금당했다는 무시무시한 사례가 줄을 잇는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사채업자한테 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즉각 경찰에 연락해 합동작전에 나서기도 한다. “피해신고센터를 개설한 뒤에 보니까 사채업자들이 차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하고 있더군요. 채무자를 땅에 묻어버리고, 신고하면 일가족을 죽인다는 협박에서부터 빚 200만원 때문에 안구 포기각서를 쓰게 한 경우도 있었고….” 국내 악질 사채업자들에 비하면 일본계 사채업자는 양반 축에 들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피해신고센터가 개설된 뒤로 국내 사채업자들의 가혹한 횡포는 크게 수그러들었고, 전화로 욕설을 내뱉는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그는 “돈 빌린 사람이 오히려 더 큰소리치기도 한다”고 과장섞어 말하기도 했다. 대신 일본계 사채업자한테 걸리면 ‘못 갚으면 죽는’ 게 요즘 사채동네 풍경이다. 일본계 사채업자는 빌려줄 때는 그렇게 친절할 수 없지만 빚을 받을 때가 되면 그렇게 무서울 수 없다. “내일 이자 내는 날입니다.” 이자 내는 날이 닥치면 직장의 평온을 깨뜨리는 전화부터 시작한다. 빚을 갚지 않으면 가족은 물론 장인·장모에 사돈의 팔촌한테까지 시도 때도 없이 협박전화를 걸어 채무자를 더 이상 못 견디게 한다. 돈을 못 갚으면 대신 마약 심부름이나 남의 사생활을 추적하는 불법 흥신소 일까지 시킨다.
일본계 사채업자들은 특히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법’(대부업법)이 국회에서 표류하는 틈을 타 서민들을 상대로 한 고리대금업을 확대하고 있다. “가족 및 친인척들을 담보로 채권회수를 할 수 없게 한 대부업법이 하루 빨리 제정돼야 합니다. 법이 시행되면 사채업자도 신중하게 돈을 빌려줄 것이고, 아마 법대로 지키면 사채업에 손대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정부가 내놓은 대부업법안은 사채 이자율을 연 60%(±30%)로 제한하고, 사채업자가 채무자나 그 친인척한테 공포심을 유발하는 정도의 빚독촉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앞으로 사채업자한테서 돈을 빌리는 사람은 녹음기를 준비했다가 협박당할 때 녹취해둬야 합니다. 사채업자를 대부업법 위반으로 걸 수 있거든요.”
400만원 빛이 2천만원으로
요즘 사채시장에서 가장 번창하는 상품은 단연 ‘연체대납’이다. 개인 신용불량자 250만명(카드 신용불량자 100만명)을 넘다 보니 카드대금 연체를 사채업자가 대신 갚아주고 고리를 뜯는 것이다. 사채업자의 이른바 ‘작업’에 걸려들면 꼼짝없이 당하는데, 작업은 이 카드연체 대납에서 시작된다. 채무자한테 카드를 받아 정상화한 뒤 카드로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다해서 돈을 융통해주고 고리 수수료를 착취한다. 현금서비스가 바닥나면 ‘카드깡’으로 다시 수수료를 챙긴다. 이 과정에서 빚은 더욱 불어나고, 채무자의 직업을 속여 소득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장난’을 통해 새로 카드를 발급받게 해준다. 여기서 터무니없는 수수료를 또 챙긴다. 그것도 부족하면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작업이 알선·중개다. 다른 사채업자나 금융기관을 알선해주거나 자동차를 할부구입하게 한 뒤 중고차 시장에 내다파는 이른바 ‘대포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사채업자의 작업에 넘어간 뒤 6개월 정도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빠집니다. 당초 400만원에 지나지 않은 카드 연체대금이 6개월 뒤면 약 2천만원이 넘는 빚으로 불어나는 건데, 남은 것은 평생 갚을 수 없는 빚더미와 신용불량자라는 멍에뿐이죠.”
은행 대출도 어렵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도 다 빼 써버려 더 이상 돈 나올 데가 없으면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이 사채업자 사무실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사채를 이용하느냐”고 되묻는다. 사채 이용자를 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체인지론’ 상품을 활용하라는 얘기다. 체인지론은 상호저축은행마다 내놓은 금융상품으로, 사채이용증명서를 끊어오면 연리 60% 정도의 이율로 대출해준다.
그렇다고 그가 사채업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여기는 건 아니다. “어차피 제도금융권에서 다 소화할 수 없는 만큼 사채는 ‘필요악’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악덕 고리대금 사채업자도 많지만, 큰 돈을 쥔 전주한테 사채자금을 조달하는데다 빌려준 돈을 떼이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이자율이 어쩔 수 없이 높은 겁니다.” 국내 사채업체는 2만여개로, 이 가운데 30여곳만이 대출규모가 한달 10억원 이상이고 나머지는 구멍가게 수준의 영세업체다.
사채까지 손댔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채업에 손을 뻗쳤다가 신세 망치는 업자도 많다. “나는 사채업자요”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듯, 최후의 방편으로 사채업에 뛰어든 업자도 적지 않다. 남은 재산 다 털어 먹고살기 위해 ‘돈장사’를 시작하다 보니 악랄하더라도 손에 피묻히는 채권회수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빌려준 돈을 떼어 부실채권이 쌓이자 사채업자가 또 다른 사채업자를 등치는 일도 잦다. 자기 돈을 갚지 못한 악성 채무자가 있으면 그의 서류를 위조해 우량고객으로 둔갑시킨 뒤 다른 사채업자한테 보내서 대출받게 해 자기 돈을 회수하는 식이다.
사채업자도 무분별한 대출 삼가야
사채를 몇번 쓰다가 사채업자의 길에 들어서는 사람도 많다. 자신이 업자한테 꼬박꼬박 내는 이자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사채에 매력을 느껴 사채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매력은커녕 돈을 떼이는 일이 잦아지면서 사채업자도 미친 사람처럼 되어가고 밤잠을 설치다가 가정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전주한테 진 거액의 빚과 채무자들을 협박하면서 얻은 폭행전과만 남는다.
사채를 쓰는 사람이 돈을 빌릴 때는 고개를 숙이지만 일단 빌리고 나면 상황이 뒤바뀐다. 막가는 심정으로 사채까지 끌어쓴 마당이다 보니 “맘대로 하라”며 오히려 배짱을 부리는 채무자도 있다. “피해신고 전화 가운데 사채업자가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빌려준 돈을 받으러 채무자 집에 찾아갔는데 온갖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집어던지더란 겁니다. 앉아서 돈 빌려주고 엎드려서 받는 격이죠.”
사채 이용자는 사채의 덫에 걸려들지 않고, 사채업자는 빌려준 돈도 못 받은 채 폭행혐의로 감방에 가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길은 없을까.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분별한 사채대출을 삼가야 합니다. 채무자를 벼랑 끝으로 몰지 말고 과도한 이자는 탕감해주면서 장기적으로 회수하는 게 사채업자한테도 바람직한 것이죠.”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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